1 폭풍 전야 – 2. 루거우차오 사건 (2)

 

 

전쟁의 9할은 후대 사람이 보면 어이없는 이유로, 1할은 당대 사람이 봐도 어이없는 이유로 벌어진다.”

 웬리 (《은하영웅전설》의 등장 인물)

 

 

베이핑(北平). 춘추 전국 시대부터 연나라의 수도라 하여 연경이라 불리다가 삼국 시대에 계(?)라고 개칭되었고,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던 원나라 시대에는 대도(大都)라 불리던 곳이며, 훗날 인민 정부가 들어서자 베이징으로 개칭된 도시. 한때는 중국의 변방, 이민족들이 발호하는 근거지로 활용되었던 곳이지만, 이제는 중국의 심장이 되어 뛰는 곳이었다.

이 곳을 향해 서서히 마수를 뻗치러 다가오는 세력이 바로 일본군이었다.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우고 베이핑 동북쪽의 열하성까지 점령하면서 누가 봐도 이들이 베이핑을 노리는 것은 명백했다.

중화민국과 일본, 이 두 세력이 한 요충지를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 루거우차오(盧溝橋)라고 이름이 붙은 한 외진 다리였다. 중화민국의 입장에서 여기를 잃는다는 것은 베이핑으로 가는 길을 내준다는 의미가 되었고, 반대로 일본 입장에서도 이 다리를 점령해야 베이핑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다리를 놓고 대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던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7월 7일 밤 23시, 지나주둔보병제1연대(支那駐屯步兵第1連隊)에서.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곧이어 화급한 외침이 들렸다.

“비상! 비상! 장병들은 즉시 훈련을 중단하고 연병장에 집결하라!”

곧 장병들이 군복과 장비를 챙기고 연병장에 우르르 몰려나와 오와 열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명이 없었다.

“총원 75명, 현재 74명! 실종 1명! 실종된 1명은 시무라 키쿠지로(志村菊次?) 일병으로 확인됨! 실종 원인 불명!”

“무슨 소리야! 한 명이 실종되다니! 어디서 총 맞아 죽은 거 아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총성이 울리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꾸물대지 말고 인근을 수색하도록!”

중대장의 표정이 구겨졌다. 수색을 명령하는 중대장의 호령에 장병들은 투덜대면서 실종된 병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명령이 떨어진 지 고작 20여 분 만에 실종된 병사가 나타났다.

“자네는 대체 어디에 있었나!”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말도 없이 몰래 화장실에 갔다오는 게 말이나 되나!”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지금 즉시 연병장을 30바퀴, 오리걸음으로 돌도록!”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중대장이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한편, 수색 명령이 막 떨어진 때에 연대장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대좌가 제3대대장 이치기 키요나오(一木淸直) 소좌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총성이 들린 후에 인원 점검을 하였더니 한 명의 병사가 실종되었습니다!”

“그거 중국군이 납치해 간 거 아냐?”

“모르겠습니다! 일단 현재 인근 지역에 수색을 명령한 상태입니다!”

“일단 중국군에 한 번 물어보는 것이 좋겠군. 즉각 저쪽에 전화를 걸어서 완핑(宛平) 요새를 넘어 들어갈 것을 요청하라!”

“하잇!”

이 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지싱웬(Ji Xingwen : 길성문, 吉星文) 상교(上校, 한국의 대령과 같음)로 제29군 37사단 219연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며, 같은 시각 일본의 정보부로부터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제29군 사령관 첸더춘(Qin Dechun : 진덕순, 秦德純) 중장이었다. 그가 전해 온 답신은 다음과 같았다.

‘내 생각에는 아무런 통보 없이 군대를 우리 관할 지역으로 움직이는 것은 중국에 대한 명백한 주권 침해 행위가 되오. 따라서 완핑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소. 그러나 해당 병사의 신원을 알려주면 이쪽에서도 수색을 지시하여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리다.’

일단 정보부는 이 정도로 만족하였으나, 곧이어 사건이 터졌다.

 

“중국놈들이 우리를 돕기나 하겠어?”

“대충 수색해 보고 끝나겠지! 저 챤코로들이 뭘 제대로 할 수나 있겠냔 말이야! 그러니 우리가 찾아야 하겠지!”

그렇게 반쯤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대던 일본군 장병들이 문제의 완핑을 넘어가서 수색하려고 했다. 그때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제지했다.

“뭐야 이건?”

나타난 병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중국군인 것 같았다. 뭐라고 말을 하면서 그들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뭐래는 거야? 야, 통역병! 통역병!”

“하잇!”

“저놈들 지금 뭐라고 지껄여대고 있는 거냐?”

“여기서부터는 중국 관할이라 합니다!”

“개소리 말고 빨리 비키라고 해!”

통역병이 말을 전달하자 곧 그들의 표정이 험악해지면서 몇몇 중국인들이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면 쏘겠다고 합니다!”

“제기랄… 수에서는 지금 우리가 밀리니, 일단 후퇴한다! 이 모욕은 두 배로 되돌려주지!”

투덜대면서 어쩔 수 없이 일본군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이 보고를 받은 일본군 사령부는 즉각 최후 통첩을 날렸다. 열기가 조금씩 고조되고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을 깨달은 첸더춘 장군이 37사단장 펑즈안(Feng Zhian : 풍치안, 馮治安) 중장에게 연락하여 즉각 전투 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

 

다음날 새벽 3시 반.

야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지원군이 베이핑 인근의 펑타이에서 도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중국군은 새벽 4시 50분에 완핑으로 일본 수색군이 넘어오는 것을 허용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도심에 일본 수색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총 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군이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뭐야! 상대방의 세력은 얼마나 되는가?”

“기관총과 야포로 무장하여 아군의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리는 사수해야 한다! 곧 증원병을 파병할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리를 사수하도록! 이건 명령이다!”

지싱웬 상교가 전화상으로 호령호령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야비한 놈들! 어찌 선전 포고도 없이, 게다가 멀쩡히 수색 허가를 내주었는데도 저렇게 공격을 해 온단 말인가!’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를 퍼부으면서 상교가 즉시 사단장에 전화를 걸었다.

“첸 장군, 지싱웬 상교입니다! 다리를 지키는 인원이 불과 백 명밖에 되지 않아, 중화기로 무장한 적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급히 증원 요청합니다!”

“알겠네! 상교는 오후까지 다리를 사수하도록! 증원군을 즉시 파병할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리는 꼭 사수하도록 하라! 다리가 넘어가면 베이핑이 위험해!”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분을 참지 못한 듯 지싱웬 상교가 책상을 미친 듯이 쾅쾅 두들기고 있었다.

 

한편, 루거우차오에서는 일본군이 중국군에 큰 손실을 입힌 후 다리의 일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곧 많은 수의 중국군이 지원을 오고 안개와 비까지 내리면서 상황이 일본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 일본군은 다음날인 7월 9일 오전 9시경에 다리를 다시 내준 채 후퇴하기 시작했다.

중화민국과 일본이 서로 협상에 나선 것은 그때였다.

 

곧 일본군과 첸 장군의 구두 계약이 사령부에 도착했다.

“다들 소식을 들어서 아시겠소다만, 중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가 있을 것이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며, 완핑 요새를 219여단이 아닌 화북 공안이 관리한다는 내용이 그 골자요.”

카니치로 타시로(田代 晥一郞) 중장이 회의 자리에서 말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장교들을 쭉 둘러보았다. 무타구치 렌야는 웬일인지 한 팔에 붕대를 감고 서 있었다. 자기가 다쳤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할 심산인가, 하며 붕대를 자세히 보고 있자니 핏자국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다치지도 않은 주제에 다친 척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카니치로 중장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반드시 있어야 할 한 명이 없었다.

“마사카즈 카와베(河? 正三) 소장은 어디로 갔나?”

“휴전을 인정하지 못하고 완핑 요새를 공격하는 모양입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휴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몹시 화를 냈다고 합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명령 불복종 아닌가? 즉각 공격을 멈추고 병력을 북동쪽으로 이동하도록 전령을 보내게.”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카니치로 중장이 명령을 내렸다. 아랫것들이라고 있는 것이 이처럼 명령 불복종을 하지 않나, 다치지도 않은 주제에 다쳤다고 쇼를 하지 않나… 한숨을 한 번 내쉰 그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근처의 병력들을 이쪽으로 추가적으로 증원하도록.”

“아니, 상부에서는 협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와중에 증원이라니요? 중국군을 자극하는 행위가 아닙니까?”

“바로 그 상부의 지시일세.”

“이상하군요. 하지만 명령이니 따르겠습니다.”

“좋네. 가용 병력을 파악하고 이 지역으로 증원병력을 보내게나. 가능한 한 빨리 말일세.”

그 명령을 끝으로 그는 일단 이것으로 작전회의를 마쳤다. 강제로 북동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은 마사카즈 소장은 요새를 세 시간 동안 공략하고 나서야 겨우 명령에 따랐다.

증원을 결정한 것은 중국군도 마찬가지라서, 이 때 네 개의 중국군 사단과 세 개의 일본군 사단이 증원을 목적으로 루거우차오에 보내졌다. 게다가 정전 협약이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지전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양측의 갈등이 그렇게 점차 심화되고 있었다.

 

7월 11일, 일본의 총리관저.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 총리가 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보고서의 작성자는 이시와라 칸지(石原莞爾) 소장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일본 국가에서 어떤 행동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를 읽은 고노에 총리가 육군대신 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 원수육군대장에게 물었다.

“중국군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쟁이 나면 한 달 안에 모두 점령해버릴 수 있을 것이오. 중국 정도야 뭐 손쉽게 점령할 수 있지요.”

“그렇게 땅덩어리가 넓은데도 말입니까?”

“저들은 제대로 된 군사도 없고, 훈련도 안 되어 있으며, 전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놈들이외다. 일단 전쟁을 벌이면 필히 우리가 승리할 것이오.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소이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좀 강하게 나가도 되겠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소이다. 걱정하지 말고 강경하게 나가시오. 저들이 발끈해서 공격해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오. 게다가 밖에서 전쟁이 나면 안쪽으로 시끄러운 것들도 조용히 시킬 명분이 서니 당신도 좋고 군으로서도 좋고, 일석이조 아니겠소?”

마주 보는 두 사람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좋소이다. 귀관의 의견을 받아 강경하게 나가도록 하지요.”

고노에 총리로서는 육군이 자신의 명령을 잘 따르는 것으로 생각하여 아주 기분 좋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선언문을 작성하기 위해 가 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하지만 스기야마 원수대장의 생각은 달랐다.

‘멍청한 놈, 총리라는 놈이 군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니 얼마나 식견이 좁은 자인가! 어쨌든 이걸로 됐다. 잘 이용해먹다가 중국이란 과실과 권력이란 과실은 우리가 따 먹고, 총리는 이대로 계속 이용해먹다가 기회를 봐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일단은 총리라는 자가 우리 군을 알아서 잘 키워주고 있으니 이 아니 고마운 일인가 말이야.’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생각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같은 시각, 루거우차오에 있던 일본군은 힘에 밀려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전쟁에 대한 식견이 없는지를 반증하는 한 일화였다.

 

이 와중에 톈진에 있던 카니치로 중장이 심장병으로 급사하고, 뒤이어 키요시 카츠키(香月?司) 중장이 뒤를 이었다. 이들 지휘부 및 군국주의자들의 행동 때문에 평화협상은 점차적으로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양측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일본 정부의 발표가 있던 직후였다. 일본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중국이 계획적으로 무력을 사용하고자 하였다”고 단정지으면서 일본 본토에서 3개 사단을, 만주에서 2개 사단을, 조선에서 1개 사단을 파병하여 그 지역의 병력을 증강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때, 중국의 루 산(廬山, 여산)에서 장 제스의 주재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난 직후 중국 공산당 측에서 싸움은 뒤로 하고 외적을 몰아내자는 명분을 내세우며 중화민국 측에 제안하면서 시작된 회의였다.

 

7월 17일, 전국적으로 다음과 같은 담화문이 발표되었다.

“현 상황에 대해, 우리 누구도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 장 제스는 결코 피를 바라지 않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결코 이를 바라지 않지만, 만일 현재의 사태가 최후의 관두에 다다르게 되면, 그때는 민족의 역량을 걸고 항전할 결심입니다. 우리의 영토와 자산을 노리고 들어오는 저 침략자들에게 저항 한 번 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 역사에 크나큰 수치로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단지 희생만 있을 뿐입니다. 항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저들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당당한 한 명의 중국인으로써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는 바입니다. 저들의 침략 행위를 결코 바라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나는 그간의 갈등과 다툼은 잠시 잊고 공산당과 손을 잡았습니다. 우선 외적을 몰아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은 모두들 동의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 휘하 장병들은 잠시 내부의 갈등은 잊고 외적에 맞서 싸우십시다.”

 

사태는 점점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지전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고,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본 고노에 총리가 특사를 보냈지만 육군의 방해로 이 특사가 중간에서 잡힘으로써 물밑 교섭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게다가 완핑 요새에 대한 포격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양측의 골이 깊어지던 차에 랑팡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베이징 인근에 있는 랑팡 시는 베이징과 톈진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톈진에서 베이징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기도 했다. 중국 내의 일본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 하에 일본군 여단 하나가 베이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이 도시를 공격한 것이다. 곧이어 폭격이 이어졌고, 곧 쑹저위안(Song Zheyuan : 송철원, 宋哲元) 이급상장(二級上將, 한국군 중장과 동일)에게 융딩허(영정하, 永定河) 서안으로 24시간 내로 퇴각하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당연히 쑹저위안 상장은 격분하고 있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해! 어딜 저열한 놈들이 남의 병력을 가지고 철수하라 마라 난리를 치고 있는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 군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하라. 현재 병력이 모자라니 충원 병력을 달라고 본부에 이야기해 보겠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고 내려간 부관을 보며 그는 곧 중앙사령부에 전화를 걸었다.

“나 쑹 상장이요. 지금 즉시 대규모 증원이 필요하오. 일본군이 24시간 내로 철수하지 않을 경우 총공격을 하겠다고 선언해 왔소이다.”

“이쪽으로서도 가용 병력이 없어요. 그쪽으로 증원할 병력은커녕 아직 전쟁 준비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단 말입니다.”

“뭐요? 루거우차오에서 사건이 벌어진 지 벌써 20일이 지났소!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아직까지 병력이 준비조차 되지 않은 것이오!”

“쑹 장군,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어쩔 수가 없지 않소. 쑹 장군도 우리 중화민국이 얼마나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한지, 또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한지 잘 알고 있지 않소? 좀 힘들겠지만 귀관의 병력으로 일단 지키시오. 충원 병력은 되는대로 보내 드리리다.”

달래는 사령부를 상대로 또 한번 쑹 상장이 대노하고 있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병력에서도, 장비에서도 심각하게 열세인 게 우리 군이라는 것을 귀관이 모를 리 있소! 당장 이쪽으로 병력을 지원하지 않으면 베이핑이 넘어갈 판이오, 베이핑이! 어찌하여 귀관들은 우리 중화민국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고 하고 있느냔 말이오!”

“자자, 쑹 장군, 진정해요. 진정해. 그러니까 내 되는 대로 병력을 보내겠다고 하지 않소. 전쟁 준비가 전혀 안 된 관계로 우린 필요하면 후퇴하여 2선에서 작전을 개시하려고 하고 있소이다. 장군이 화를 내도 변하는 건 없어요. 잠시 시간을 끈다고 생각하고, 버텨 주시오. 부탁하외다.”

곧 전화가 끊어졌다. 쑹 장군은 체념하고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중국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

일본군의 총공세는 명백하게 베이핑을 향해 있었다. 베이핑의 난유안과 베이유안을 향해 총공세를 펼치던 와중에 29군 부사령관 퉁린거(동린각, ?麟閣) 중장은 이미 전사했고 132사단장 자오덩위(趙登禹, 조등우) 중장 또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오른팔과 다리에 총상을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그는 지휘권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7월 29일 반격을 위해 다홍먼(대홍문, 大紅門)으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결국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한 그는 중화민국군의 영웅이 되었으며, 이틀 후 국가에서는 퉁린거 중장과 자오덩위 중장에게 사후 1계급 특진하여 이급상장을 추서하였다. 일부 여단이 일본군의 진격을 막고 반격을 하긴 했지만, 대세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결국 쑹 상장은 융딩허 남안으로 병력을 철수시킬 수밖에 없었고, 일본군은 한 달만에 베이핑과 톈진 일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거대한 전투, 중국 역사상 최악의 사상자를 낸 중일 전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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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꼭 30일 만입니다. 쩝. 꾸준한 게 좋기는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꾸준해지기가 참으로 힘드네요. 쓸 때마다 표현력의 부재와 글 실력의 짧음을 몸으로 체감하는 건 이제는 일상입니다.  지금까지 썼던 글을 모두 모아 보니 대략 1만 단어쯤(정확히 9956단어) 되네요.


헷갈리실 것 같아서 적어둡니다. 각군의 직위는 당시 당국에서 사용했던 직위명을 최대한 존중했기 때문에 복잡하실 겁니다. 어차피 글의 특성상 등장하게 되는 계급은 중령/대령 이상인 경우가 99%인 만큼, 대충 대차대조를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왼쪽부터 현 국군 - 일본군 - 중화민국군의 순서가 됩니다.


중령 - 중좌 - 중교

대령 - 대좌 - 상교

준장 - 소장 - 소장

소장 - 중장 - 중장

중장 - 대장 - 이급상장

대장 - 없음 - 일급상장

원수 - 원수육군대장 - 특급상장


구 일본군의 경우 별이 세 개까지 한계였습니다. 4성 장군은 없었고, 3성 장군 중에서 특별히 공적이 있는 자에게 원수라는 칭호를 주었지만 형식상의 계급은 여전히 대장이었습니다. 국군에 원수가 명예직이듯이 중화민국에서도 특급상장은 장제스 단 한명뿐이었습니다(...)


극도로 마르고 건조하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게 이 글을 쓰는 목적인 만큼, 이런 군 칭호면에서도 최대한 리얼리티를 추구하였죠. 그러다 보니 중국군 각 장교들의 당시 계급을 찾아서 또다시 인터넷을 세 시간을 뒤지고... 그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저번에는 일본어 위키피디아를 이 잡듯이 뒤졌는데, 이번에는 중국 사이트를 헤맸죠. 소설 쓰는 건 불과 두 시간이었는데 자료 조사에 세 시간이 추가로 걸렸습니다. 겨우겨우 1935년부터 1949년까지 국민당의 장군 진급자 목록을 손에 넣을 수 있었죠. 누가 몇 월 며칠에 소장/중장/이급상장/일급상장으로 진급하고 추서되고 했는지 말입니다.

이 자료 찾느라 과장 좀 부풀려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푸념은 이쯤 해 두고, 매번 쓰는 말이지만 정말 글쓰는 실력이 부족함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면에서의 표현력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쓰면서도 답답했어요. 거기에 분량 문제까지 겹치면서(워낙 대작인 관계로 한 번에 대략 2천 단어 정도를 쓰는데, 이거 채우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정말 골치가 아프네요. 페이지 설정이 가로 15.3/세로 22.5cm에 위아래 여백 1.5cm, 좌우 여백 2cm를 주고 글자 포인트는 10으로 채웠는데, 어느새 50장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혹 모르죠. 나중에 제 이름으로 걸린 역사소설이 시리즈물로 한 편 나올지. 그게 10년 후가 될지 30년 후가 될지 알 수가 없어서 탈입니다마는(...)


마지막 잡담으로, 카테고리 분류하기가 참 난감하네요. 일단 순문학으로 분류를 했지만 이건 문학과 비문학이 2:8로 섞인 물건이라... 팬픽으로 분류하자니 지나칠 정도로 사실을 추구하는 물건이라 그렇게 분류하기도 좀 그렇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