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풍 전야 – 2. 루거우차오 사건 (2)

 

 

전쟁의 9할은 후대 사람이 보면 어이없는 이유로, 1할은 당대 사람이 봐도 어이없는 이유로 벌어진다.”

 웬리 (《은하영웅전설》의 등장 인물)

 

 

베이핑(北平). 춘추 전국 시대부터 연나라의 수도라 하여 연경이라 불리다가 삼국 시대에 계(?)라고 개칭되었고,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던 원나라 시대에는 대도(大都)라 불리던 곳이며, 훗날 인민 정부가 들어서자 베이징으로 개칭된 도시. 한때는 중국의 변방, 이민족들이 발호하는 근거지로 활용되었던 곳이지만, 이제는 중국의 심장이 되어 뛰는 곳이었다.

이 곳을 향해 서서히 마수를 뻗치러 다가오는 세력이 바로 일본군이었다.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우고 베이핑 동북쪽의 열하성까지 점령하면서 누가 봐도 이들이 베이핑을 노리는 것은 명백했다.

중화민국과 일본, 이 두 세력이 한 요충지를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 루거우차오(盧溝橋)라고 이름이 붙은 한 외진 다리였다. 중화민국의 입장에서 여기를 잃는다는 것은 베이핑으로 가는 길을 내준다는 의미가 되었고, 반대로 일본 입장에서도 이 다리를 점령해야 베이핑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다리를 놓고 대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던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7월 7일 밤 23시, 지나주둔보병제1연대(支那駐屯步兵第1連隊)에서.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곧이어 화급한 외침이 들렸다.

“비상! 비상! 장병들은 즉시 훈련을 중단하고 연병장에 집결하라!”

곧 장병들이 군복과 장비를 챙기고 연병장에 우르르 몰려나와 오와 열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명이 없었다.

“총원 75명, 현재 74명! 실종 1명! 실종된 1명은 시무라 키쿠지로(志村菊次?) 일병으로 확인됨! 실종 원인 불명!”

“무슨 소리야! 한 명이 실종되다니! 어디서 총 맞아 죽은 거 아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총성이 울리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꾸물대지 말고 인근을 수색하도록!”

중대장의 표정이 구겨졌다. 수색을 명령하는 중대장의 호령에 장병들은 투덜대면서 실종된 병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명령이 떨어진 지 고작 20여 분 만에 실종된 병사가 나타났다.

“자네는 대체 어디에 있었나!”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말도 없이 몰래 화장실에 갔다오는 게 말이나 되나!”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지금 즉시 연병장을 30바퀴, 오리걸음으로 돌도록!”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중대장이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한편, 수색 명령이 막 떨어진 때에 연대장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대좌가 제3대대장 이치기 키요나오(一木淸直) 소좌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총성이 들린 후에 인원 점검을 하였더니 한 명의 병사가 실종되었습니다!”

“그거 중국군이 납치해 간 거 아냐?”

“모르겠습니다! 일단 현재 인근 지역에 수색을 명령한 상태입니다!”

“일단 중국군에 한 번 물어보는 것이 좋겠군. 즉각 저쪽에 전화를 걸어서 완핑(宛平) 요새를 넘어 들어갈 것을 요청하라!”

“하잇!”

이 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지싱웬(Ji Xingwen : 길성문, 吉星文) 상교(上校, 한국의 대령과 같음)로 제29군 37사단 219연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며, 같은 시각 일본의 정보부로부터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제29군 사령관 첸더춘(Qin Dechun : 진덕순, 秦德純) 중장이었다. 그가 전해 온 답신은 다음과 같았다.

‘내 생각에는 아무런 통보 없이 군대를 우리 관할 지역으로 움직이는 것은 중국에 대한 명백한 주권 침해 행위가 되오. 따라서 완핑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소. 그러나 해당 병사의 신원을 알려주면 이쪽에서도 수색을 지시하여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리다.’

일단 정보부는 이 정도로 만족하였으나, 곧이어 사건이 터졌다.

 

“중국놈들이 우리를 돕기나 하겠어?”

“대충 수색해 보고 끝나겠지! 저 챤코로들이 뭘 제대로 할 수나 있겠냔 말이야! 그러니 우리가 찾아야 하겠지!”

그렇게 반쯤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대던 일본군 장병들이 문제의 완핑을 넘어가서 수색하려고 했다. 그때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제지했다.

“뭐야 이건?”

나타난 병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중국군인 것 같았다. 뭐라고 말을 하면서 그들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뭐래는 거야? 야, 통역병! 통역병!”

“하잇!”

“저놈들 지금 뭐라고 지껄여대고 있는 거냐?”

“여기서부터는 중국 관할이라 합니다!”

“개소리 말고 빨리 비키라고 해!”

통역병이 말을 전달하자 곧 그들의 표정이 험악해지면서 몇몇 중국인들이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면 쏘겠다고 합니다!”

“제기랄… 수에서는 지금 우리가 밀리니, 일단 후퇴한다! 이 모욕은 두 배로 되돌려주지!”

투덜대면서 어쩔 수 없이 일본군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이 보고를 받은 일본군 사령부는 즉각 최후 통첩을 날렸다. 열기가 조금씩 고조되고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을 깨달은 첸더춘 장군이 37사단장 펑즈안(Feng Zhian : 풍치안, 馮治安) 중장에게 연락하여 즉각 전투 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

 

다음날 새벽 3시 반.

야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지원군이 베이핑 인근의 펑타이에서 도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중국군은 새벽 4시 50분에 완핑으로 일본 수색군이 넘어오는 것을 허용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도심에 일본 수색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총 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군이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뭐야! 상대방의 세력은 얼마나 되는가?”

“기관총과 야포로 무장하여 아군의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리는 사수해야 한다! 곧 증원병을 파병할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리를 사수하도록! 이건 명령이다!”

지싱웬 상교가 전화상으로 호령호령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야비한 놈들! 어찌 선전 포고도 없이, 게다가 멀쩡히 수색 허가를 내주었는데도 저렇게 공격을 해 온단 말인가!’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를 퍼부으면서 상교가 즉시 사단장에 전화를 걸었다.

“첸 장군, 지싱웬 상교입니다! 다리를 지키는 인원이 불과 백 명밖에 되지 않아, 중화기로 무장한 적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급히 증원 요청합니다!”

“알겠네! 상교는 오후까지 다리를 사수하도록! 증원군을 즉시 파병할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리는 꼭 사수하도록 하라! 다리가 넘어가면 베이핑이 위험해!”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분을 참지 못한 듯 지싱웬 상교가 책상을 미친 듯이 쾅쾅 두들기고 있었다.

 

한편, 루거우차오에서는 일본군이 중국군에 큰 손실을 입힌 후 다리의 일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곧 많은 수의 중국군이 지원을 오고 안개와 비까지 내리면서 상황이 일본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 일본군은 다음날인 7월 9일 오전 9시경에 다리를 다시 내준 채 후퇴하기 시작했다.

중화민국과 일본이 서로 협상에 나선 것은 그때였다.

 

곧 일본군과 첸 장군의 구두 계약이 사령부에 도착했다.

“다들 소식을 들어서 아시겠소다만, 중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가 있을 것이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며, 완핑 요새를 219여단이 아닌 화북 공안이 관리한다는 내용이 그 골자요.”

카니치로 타시로(田代 晥一郞) 중장이 회의 자리에서 말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장교들을 쭉 둘러보았다. 무타구치 렌야는 웬일인지 한 팔에 붕대를 감고 서 있었다. 자기가 다쳤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할 심산인가, 하며 붕대를 자세히 보고 있자니 핏자국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다치지도 않은 주제에 다친 척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카니치로 중장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반드시 있어야 할 한 명이 없었다.

“마사카즈 카와베(河? 正三) 소장은 어디로 갔나?”

“휴전을 인정하지 못하고 완핑 요새를 공격하는 모양입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휴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몹시 화를 냈다고 합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명령 불복종 아닌가? 즉각 공격을 멈추고 병력을 북동쪽으로 이동하도록 전령을 보내게.”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카니치로 중장이 명령을 내렸다. 아랫것들이라고 있는 것이 이처럼 명령 불복종을 하지 않나, 다치지도 않은 주제에 다쳤다고 쇼를 하지 않나… 한숨을 한 번 내쉰 그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근처의 병력들을 이쪽으로 추가적으로 증원하도록.”

“아니, 상부에서는 협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와중에 증원이라니요? 중국군을 자극하는 행위가 아닙니까?”

“바로 그 상부의 지시일세.”

“이상하군요. 하지만 명령이니 따르겠습니다.”

“좋네. 가용 병력을 파악하고 이 지역으로 증원병력을 보내게나. 가능한 한 빨리 말일세.”

그 명령을 끝으로 그는 일단 이것으로 작전회의를 마쳤다. 강제로 북동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은 마사카즈 소장은 요새를 세 시간 동안 공략하고 나서야 겨우 명령에 따랐다.

증원을 결정한 것은 중국군도 마찬가지라서, 이 때 네 개의 중국군 사단과 세 개의 일본군 사단이 증원을 목적으로 루거우차오에 보내졌다. 게다가 정전 협약이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지전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양측의 갈등이 그렇게 점차 심화되고 있었다.

 

7월 11일, 일본의 총리관저.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 총리가 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보고서의 작성자는 이시와라 칸지(石原莞爾) 소장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일본 국가에서 어떤 행동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를 읽은 고노에 총리가 육군대신 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 원수육군대장에게 물었다.

“중국군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쟁이 나면 한 달 안에 모두 점령해버릴 수 있을 것이오. 중국 정도야 뭐 손쉽게 점령할 수 있지요.”

“그렇게 땅덩어리가 넓은데도 말입니까?”

“저들은 제대로 된 군사도 없고, 훈련도 안 되어 있으며, 전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놈들이외다. 일단 전쟁을 벌이면 필히 우리가 승리할 것이오.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소이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좀 강하게 나가도 되겠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소이다. 걱정하지 말고 강경하게 나가시오. 저들이 발끈해서 공격해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오. 게다가 밖에서 전쟁이 나면 안쪽으로 시끄러운 것들도 조용히 시킬 명분이 서니 당신도 좋고 군으로서도 좋고, 일석이조 아니겠소?”

마주 보는 두 사람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좋소이다. 귀관의 의견을 받아 강경하게 나가도록 하지요.”

고노에 총리로서는 육군이 자신의 명령을 잘 따르는 것으로 생각하여 아주 기분 좋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선언문을 작성하기 위해 가 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하지만 스기야마 원수대장의 생각은 달랐다.

‘멍청한 놈, 총리라는 놈이 군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니 얼마나 식견이 좁은 자인가! 어쨌든 이걸로 됐다. 잘 이용해먹다가 중국이란 과실과 권력이란 과실은 우리가 따 먹고, 총리는 이대로 계속 이용해먹다가 기회를 봐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일단은 총리라는 자가 우리 군을 알아서 잘 키워주고 있으니 이 아니 고마운 일인가 말이야.’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생각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같은 시각, 루거우차오에 있던 일본군은 힘에 밀려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전쟁에 대한 식견이 없는지를 반증하는 한 일화였다.

 

이 와중에 톈진에 있던 카니치로 중장이 심장병으로 급사하고, 뒤이어 키요시 카츠키(香月?司) 중장이 뒤를 이었다. 이들 지휘부 및 군국주의자들의 행동 때문에 평화협상은 점차적으로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양측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일본 정부의 발표가 있던 직후였다. 일본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중국이 계획적으로 무력을 사용하고자 하였다”고 단정지으면서 일본 본토에서 3개 사단을, 만주에서 2개 사단을, 조선에서 1개 사단을 파병하여 그 지역의 병력을 증강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때, 중국의 루 산(廬山, 여산)에서 장 제스의 주재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난 직후 중국 공산당 측에서 싸움은 뒤로 하고 외적을 몰아내자는 명분을 내세우며 중화민국 측에 제안하면서 시작된 회의였다.

 

7월 17일, 전국적으로 다음과 같은 담화문이 발표되었다.

“현 상황에 대해, 우리 누구도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 장 제스는 결코 피를 바라지 않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결코 이를 바라지 않지만, 만일 현재의 사태가 최후의 관두에 다다르게 되면, 그때는 민족의 역량을 걸고 항전할 결심입니다. 우리의 영토와 자산을 노리고 들어오는 저 침략자들에게 저항 한 번 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 역사에 크나큰 수치로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단지 희생만 있을 뿐입니다. 항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저들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당당한 한 명의 중국인으로써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는 바입니다. 저들의 침략 행위를 결코 바라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나는 그간의 갈등과 다툼은 잠시 잊고 공산당과 손을 잡았습니다. 우선 외적을 몰아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은 모두들 동의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 휘하 장병들은 잠시 내부의 갈등은 잊고 외적에 맞서 싸우십시다.”

 

사태는 점점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지전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고,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본 고노에 총리가 특사를 보냈지만 육군의 방해로 이 특사가 중간에서 잡힘으로써 물밑 교섭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게다가 완핑 요새에 대한 포격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양측의 골이 깊어지던 차에 랑팡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베이징 인근에 있는 랑팡 시는 베이징과 톈진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톈진에서 베이징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기도 했다. 중국 내의 일본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 하에 일본군 여단 하나가 베이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이 도시를 공격한 것이다. 곧이어 폭격이 이어졌고, 곧 쑹저위안(Song Zheyuan : 송철원, 宋哲元) 이급상장(二級上將, 한국군 중장과 동일)에게 융딩허(영정하, 永定河) 서안으로 24시간 내로 퇴각하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당연히 쑹저위안 상장은 격분하고 있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해! 어딜 저열한 놈들이 남의 병력을 가지고 철수하라 마라 난리를 치고 있는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 군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하라. 현재 병력이 모자라니 충원 병력을 달라고 본부에 이야기해 보겠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고 내려간 부관을 보며 그는 곧 중앙사령부에 전화를 걸었다.

“나 쑹 상장이요. 지금 즉시 대규모 증원이 필요하오. 일본군이 24시간 내로 철수하지 않을 경우 총공격을 하겠다고 선언해 왔소이다.”

“이쪽으로서도 가용 병력이 없어요. 그쪽으로 증원할 병력은커녕 아직 전쟁 준비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단 말입니다.”

“뭐요? 루거우차오에서 사건이 벌어진 지 벌써 20일이 지났소!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아직까지 병력이 준비조차 되지 않은 것이오!”

“쑹 장군,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어쩔 수가 없지 않소. 쑹 장군도 우리 중화민국이 얼마나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한지, 또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한지 잘 알고 있지 않소? 좀 힘들겠지만 귀관의 병력으로 일단 지키시오. 충원 병력은 되는대로 보내 드리리다.”

달래는 사령부를 상대로 또 한번 쑹 상장이 대노하고 있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병력에서도, 장비에서도 심각하게 열세인 게 우리 군이라는 것을 귀관이 모를 리 있소! 당장 이쪽으로 병력을 지원하지 않으면 베이핑이 넘어갈 판이오, 베이핑이! 어찌하여 귀관들은 우리 중화민국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고 하고 있느냔 말이오!”

“자자, 쑹 장군, 진정해요. 진정해. 그러니까 내 되는 대로 병력을 보내겠다고 하지 않소. 전쟁 준비가 전혀 안 된 관계로 우린 필요하면 후퇴하여 2선에서 작전을 개시하려고 하고 있소이다. 장군이 화를 내도 변하는 건 없어요. 잠시 시간을 끈다고 생각하고, 버텨 주시오. 부탁하외다.”

곧 전화가 끊어졌다. 쑹 장군은 체념하고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중국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

일본군의 총공세는 명백하게 베이핑을 향해 있었다. 베이핑의 난유안과 베이유안을 향해 총공세를 펼치던 와중에 29군 부사령관 퉁린거(동린각, ?麟閣) 중장은 이미 전사했고 132사단장 자오덩위(趙登禹, 조등우) 중장 또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오른팔과 다리에 총상을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그는 지휘권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7월 29일 반격을 위해 다홍먼(대홍문, 大紅門)으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결국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한 그는 중화민국군의 영웅이 되었으며, 이틀 후 국가에서는 퉁린거 중장과 자오덩위 중장에게 사후 1계급 특진하여 이급상장을 추서하였다. 일부 여단이 일본군의 진격을 막고 반격을 하긴 했지만, 대세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결국 쑹 상장은 융딩허 남안으로 병력을 철수시킬 수밖에 없었고, 일본군은 한 달만에 베이핑과 톈진 일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거대한 전투, 중국 역사상 최악의 사상자를 낸 중일 전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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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꼭 30일 만입니다. 쩝. 꾸준한 게 좋기는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꾸준해지기가 참으로 힘드네요. 쓸 때마다 표현력의 부재와 글 실력의 짧음을 몸으로 체감하는 건 이제는 일상입니다.  지금까지 썼던 글을 모두 모아 보니 대략 1만 단어쯤(정확히 9956단어) 되네요.


헷갈리실 것 같아서 적어둡니다. 각군의 직위는 당시 당국에서 사용했던 직위명을 최대한 존중했기 때문에 복잡하실 겁니다. 어차피 글의 특성상 등장하게 되는 계급은 중령/대령 이상인 경우가 99%인 만큼, 대충 대차대조를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왼쪽부터 현 국군 - 일본군 - 중화민국군의 순서가 됩니다.


중령 - 중좌 - 중교

대령 - 대좌 - 상교

준장 - 소장 - 소장

소장 - 중장 - 중장

중장 - 대장 - 이급상장

대장 - 없음 - 일급상장

원수 - 원수육군대장 - 특급상장


구 일본군의 경우 별이 세 개까지 한계였습니다. 4성 장군은 없었고, 3성 장군 중에서 특별히 공적이 있는 자에게 원수라는 칭호를 주었지만 형식상의 계급은 여전히 대장이었습니다. 국군에 원수가 명예직이듯이 중화민국에서도 특급상장은 장제스 단 한명뿐이었습니다(...)


극도로 마르고 건조하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게 이 글을 쓰는 목적인 만큼, 이런 군 칭호면에서도 최대한 리얼리티를 추구하였죠. 그러다 보니 중국군 각 장교들의 당시 계급을 찾아서 또다시 인터넷을 세 시간을 뒤지고... 그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저번에는 일본어 위키피디아를 이 잡듯이 뒤졌는데, 이번에는 중국 사이트를 헤맸죠. 소설 쓰는 건 불과 두 시간이었는데 자료 조사에 세 시간이 추가로 걸렸습니다. 겨우겨우 1935년부터 1949년까지 국민당의 장군 진급자 목록을 손에 넣을 수 있었죠. 누가 몇 월 며칠에 소장/중장/이급상장/일급상장으로 진급하고 추서되고 했는지 말입니다.

이 자료 찾느라 과장 좀 부풀려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푸념은 이쯤 해 두고, 매번 쓰는 말이지만 정말 글쓰는 실력이 부족함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면에서의 표현력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쓰면서도 답답했어요. 거기에 분량 문제까지 겹치면서(워낙 대작인 관계로 한 번에 대략 2천 단어 정도를 쓰는데, 이거 채우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정말 골치가 아프네요. 페이지 설정이 가로 15.3/세로 22.5cm에 위아래 여백 1.5cm, 좌우 여백 2cm를 주고 글자 포인트는 10으로 채웠는데, 어느새 50장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혹 모르죠. 나중에 제 이름으로 걸린 역사소설이 시리즈물로 한 편 나올지. 그게 10년 후가 될지 30년 후가 될지 알 수가 없어서 탈입니다마는(...)


마지막 잡담으로, 카테고리 분류하기가 참 난감하네요. 일단 순문학으로 분류를 했지만 이건 문학과 비문학이 2:8로 섞인 물건이라... 팬픽으로 분류하자니 지나칠 정도로 사실을 추구하는 물건이라 그렇게 분류하기도 좀 그렇고 말입니다.

1 폭풍 전야 – 2. 루거우차오 사건 (1)

 

 

성공하면 제왕, 실패하면 역적

- 쿠데타 관련 명언

 

 

멀리 동쪽에, 해가 떠오르는 나라라고 하여 한자를 직역하면 해가 떠오르는 근원이라 자칭하는 나라가 있다.  년에 달하는 역사 동안에 황실의 피는 바뀌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런 황실의 수장을 신으로 모시는 그러한 나라이다. 확실히  나라에 태양은 하나뿐이기는 했다. 다만 햇무리가 매우 많았을 .

 햇무리  하나인 군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936 2월의 어느  .

꼭두새벽에 도쿄의  연병장에서  연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본관은 이하 장병들에게 말한다. 현재의 상태로  나아가다가는  국가의 존망 자체가 위태로워질 지경에 이르렀다. 하여, 본관은 어지럽혀진 나라를 되돌리고 국가를 정상화하고자 무거운 마음으로 결심을 하였다. 장병 여러분은  지시에 따라 주길 바란다! 알겠나!”

하잇!”

좋다. 제군들이  명령에 따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증유의 국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어선다면 천황 폐하의 권위도 바로  것이며, 우리를 그토록  살게 굴었던 저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를 것이며, 우리는 역사의  증인이 되어 천황 폐하를 구한 구국의 영웅으로역사에 남을 것이다!”

연설이 끝난 , 장교들이 모여 작전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부대는 여기 도심을 가로막아, 오늘 하루 동안 도쿄의 도로를 철저히 통제하시오. 귀관의 목표는 우리가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시간을버는 것이오.”

목표는 확실하겠지요?”

 놈들은 어제 술을 지독하게 마시고 뻗어 있어서 지금쯤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을 것이요. 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니면 뭐겠소?오래 전부터 계획해 왔던  거사를 하늘이 돕는 것이란 말이오.  우유부단하고 약해빠진 키타 잇키와 니시타 미츠키도 이참에 구금해버리고 싶었지만, 그간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던  있어서 참고 있는 게요. 은혜를 저버려선 곤란하니.”

헌데 귀관의 부대만으로 충분하겠소?”

우리 부대 외에도 지금쯤 다른 곳에서 출발했을 것이오. 내가 지휘하는 보병제3연대 7중대 외에도 보병제1연대, 보병제3연대, 야전중포병제7연대, 근위보병제3연대 소속 중대들  1 5 명이 궐기하기로 했으니  썩어빠진 정치인 놈들을 모조리  없애기에는 충분하오. 그러니 귀관의 부대가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오.”

좋소. , 시간이 없소이다. 천황 폐하를 위하여!”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전군, 진격! 저놈들의 목을 반드시 베어야 한다!”

, 누구냐! 여기는 무슨 일이냐!”

천황 폐하를 위한 길을 막지 마라! 막으면 죽음이 있을 것이다!”

경찰, 경찰에 급히 연락을!”

으악!”

큰일이다, 어서 장관님을!”

그렇게 도쿄는 삽시간에 걷잡을  없는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도쿄를 장악한  개의 보병연대는 1 5  정도 되는 인원이었다. 기습적인 쿠데타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병력일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도쿄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데만큼은 모자람이없을 병력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피비린내나는 살육이 시작되었다. 이미 내대신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斎藤實) 대장상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 교육총감 와타나베 죠타로(渡辺錠太郎) 살해당했다. 특히나 와타나베 죠타로의 경우 통치는 천황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요지의 연설을 하는 바람에 거사 며칠 전에 명단에 추가되었다. 반란은 이토록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이번 사건의 총지휘자인 보병제3연대 7중대장 노나카 시로(野中四郎) 대위가 부관을 불렀다.

부관!”

하잇!”

경과는 어떠한가?”

우리가 목표한 인원의 절반을 살해하는  성공했습니다. 현재 오카다의 집에 이미 병력이 잔뜩 들어갔으니 오카다의 목숨은 끝난 것이나다름없습니다.”

반드시 그의 목을 확보하도록!”

하잇!”

, 그리고 말야,  얼마 전에 야마구치(山口一太郎, 야마구치 이치타로) 대위님께서 살해 목록에 넣는 것을 결사 반대했던  원로 대신말이야,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군.”

사이온지 킨모치(西園寺公望)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 야마구치 선배님은 너무 물렀어.  참에 죽일 사람은 확실히 죽이도록 해야 하는데 말이야. 여하간 좋다. 계속해서 작전을 진행한다! 귀관들은 나머지 목표를 빠르게 추적하고 목표에 방해되는 사람이 나타날  용서없이 살해하도록!”

하잇!”

 

같은 시각, 오카다 게이스케의 .

비켜라!”

으악!”

살려 !”

 소리와 검을 휘두르는 소리, 비명 소리, 울음소리, 군화 소리 등등 각종 어지러운 소리가  집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오카다 게이스케역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형님,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도심을 장악당했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도 낫겠지…”

무슨 약한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형님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총리란 말입니다!”

총리의 매부 마츠오 덴조(松尾伝蔵) 분을 참지 못하고 쏘아붙이고 있었다. 수상일  부인을 잃어 독신이었던 당시 수상관저에서 같이 살았던  바로  매부 마츠오 덴조였다. 수상이었던 오카다와 의형제 사이였던 그는 현재 내각총리대신비서관 육군 대좌의 신분으로 군에서근무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화를 내면서 탈출을 종용하고 있었다.

이미 늦었네.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도대체 자네는 무슨 수로 탈출하겠다고 그러는 것인가?”

몰려드는 고함소리가 점점 가까워 왔다.  순간 마츠오는 자신이 해야  일을 직감했다.

 들으십시오, 형님. 형님께서는 여비서의 방으로 가서 일단 거기서 몸을 숨기십시오. 그리고 기회를 봐서 탈출하시면 됩니다. 반란군이어찌  관저의 상세한 구조를 알겠습니까? 저는  나름대로 탈출할 방법을 세워놓을 테니, 일단 형님의 목숨이 우선입니다. 형님, 말씀드린대로 형님은  나라의 총리입니다. 형님이 사셔야  나라가 산단 말입니다!”

알겠네 부디 살아서 만나세. 아우도  조심하게나.”

시간이 없습니다! 형님, 어서 탈출을!”

그렇게 오카다를 먼저 억지로 떠나보낸 마츠오의 마음은 착잡했다.

 

반란군은 용서없이 들이닥쳤다. 반란군 사이로  장교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오면서 총을 겨누었다.

 장교를 향해서 마츠오가 호통을 쳤다.

네놈들은 누구냐!”

쿠리하라 야스히데(栗原安秀) 중위요. 보병제1연대 소속이오.”

군인이 대체 여기는 무슨  일이란 말이더냐!”

 저택에 있을 국가를 좀먹는 쓰레기를 처리하려 왔소. 비키시오.”

누가 쓰레기란 말이더냐! 네놈들은 법이라는 것을 무시하려 드는 것이냐!”

조용히 하시오. 우린 당신의 목숨도 날려버릴  있소이다. 여기 있는 총이 보이지 않소?”

지금 너희들이 누구를 위협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이더냐!”

우리는 얌전히 총리대신의 목만 확보하면 되오. 그러니 당신은 비키시오.”

내가 총리 대신이거늘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함부로 말하는 것이냐! 너희들이 그러고도 대일본 황군의 아들이란 말이더냐!”

 순간, 코다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 귀공이 총리란 말씀이시오? 이것   됐군. 가는 , 고통 없이 보내 드리리다.”

그렇다. 애당초 마츠오가 결심한 것은 탈출이 아니었다. 얼굴이 비슷한 그가 의형 오카다를 대신해서 이제 목숨을 다하려 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군에서 살았다. 군인이라면 죽을 때를 알아야 하는 법이고, 무엇을 위해 죽는지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다만 형님의 치세를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이리 원통할 따름이구나…’

고통으로 잠시 마츠오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억지로 평정을 가장해야 했다. 여기서 실패하면, 일이  틀어진다.

그렇다. 내가 총리대신이다!”

후후  만났군. 그간 나라를 말아먹느라 수고하셨소.  가시오, 총리.”

너희 반란군 놈들이  죽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속에 있는 권총을 빼내드려는 순간,  발의 총성이  안에 울려퍼졌다.

 

그렇게   일본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근위보병제3연대 소속 나카하시 모토아키(中橋基明) 중위가 대장상을 살해했고, 보병제3연대 소속인 사카이 나오시(坂井直) 중위와 다카하시 타로(高橋太郎) 소위  다섯 명의 장교가 몰려들어가서 내대신을 살해하고 이어 교육총감을 살해했다. 그리고 보병제1연대 소속의 쿠리하라 중위가 오카다의 집을 습격해서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 보병제3연대 6중대장 안도 테루조(安藤輝三) 대위가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郎) 시종장을 살해하기 위해 집으로 쳐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그의 집에서도 총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스즈키 시종장은 안도 대위에게 무려  발의 총을 맞았고, 아비 규환의 비명과 울음소리는 집에서도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모두 빗겨 맞은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것이다.

게다가 장례식까지 치렀던 오카다의 집에서 숨어 있던 오카다 총리가 조문객으로 위장해서 탈출했다. 오카다는 황궁으로 피신하면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우님,   못난 형을 대신해서 그리 아까운 목숨을 버렸단 말이냐    살리는  그토록 중요했느냐!   원수를 어이 갚으리오,어이 갚으리오 아우님의  원통함을 어이 갚을  있단 말이오…’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자리에 있던 그는 그렇게 속으로 절규하면서 밤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쪽의 운명은 그렇게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그렇게 총리 대신을 살해하는  실패하면서, 반란군의 세도 급격히 꺾여들어가고 있었다.

천황 폐하!  오카다이옵니다.”

아니, 총리 대신이 아니시오!”

천황 쇼와는 경악하고 있었다. 모두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오카다 총리가 살아서 자신을 알현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죽은  알고 있었소이다. 이거 곤란하게 되었군.  역시 총리가 죽은  알고 임시 총리로 고토 후미오(後藤文夫) 앉혔단 말이오. 그래, 몸은 무사하오?”

, 폐하  오카다, 참으로 민망하옵게도…”

그렇게 말하면서 오카다는 반쯤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시오, 총리?”

 오카다 참으로 민망하옵게도, 민망하옵게도 아우가  못난 신을 대신하여 아우의 목숨을 내어주고 그렇게 살아서 폐하를 알현하고 있사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오카다를 천황은 그저 안쓰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시오, 총리. 총리가 살아 돌아온 이상 총리가 국정을 계속해서 운영해야 하지 않겠소.  고토 임시 총리에게 말해서 총리직을 인계하도록 말해 두겠소이다.”

황공하옵나이다, 폐하.”

저들이 반란을 일으킨 명분이 나에게 있을 테니,  말이면 저들은 알아서 총을 내려놓을 것이오.”

천황은 그렇게 옥음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피바람이 몰아친  이틀 , 아침이 밝았다.

라디오로 천황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천황 쇼와는 도쿄  군에게 명한다.  소속 장교들은 즉시 원대로 복귀하여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라. 반복한다.  소속 장교들은 즉시 원대로 복귀하여 나에 대한 충성을 몸으로 직접 보여주기를 바란다. 원대로 복귀하지 않음은  나에 대한 반역이요, 나를 거부하는 것이다. 무단으로 밖에 나와 있는 장교들은 즉시 원대로 복귀하라. 이것은  쇼와가 직접 내리는 명령이다.”

라디오를 들은 반란군 진영은 좌절하고 있었다.

천황 폐하, 어찌하여 저희들의 충심을 몰라 주시는 것입니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노나카 대위가 분한 듯이 내뱉었다.

선배님, 이번 거사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우리의 의거를 알리기에 충분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천황 폐하의 말씀이 아닙니까. 투항하십시다.”

투항하면 우리들은 죽을 것이지만, 천황 폐하의 말씀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투항하십시다.”

병력도 적고, 우리로서는   있는 것이 없다는  참으로 분할 뿐입니다.”

누구는 침통한 얼굴로 땅을 내려다봤고, 누구는 분한 얼굴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살아나갈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결정해야  시간이었다. 죽을 것인지, 투항할 것인지.

투항할 사람들은 투항하도록 하시오. 하지만  노나카는 군인에게 있어서 투항이란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 믿소. 나는 투항하지 않겠소.”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황 폐하의 말씀을 거역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오. 이미  휘하의 장병들에게 귀대 조치를 내렸소. 나는 여기서 죽을 것이오.  저들에게  목숨을 맡길 수는 없소. 나는 여기서 죽음을 택할 것이니 귀관들은 떠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침통한 얼굴로 노나카 대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육사 36 보병제3연대7중대장 노나카 시로(野中四郎) 보병대위와 육사 40 토코로자와 육군비행학교 조종과 생도 코우노 히사시(河野寿) 항공병대위는 자결을 선택했다. 나머지 장교는 모두 투항했다. 군사 법원이 그들에게 내린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육사 37 1여단부관 코우타 키요사다(香田清貞) 보병대위, 육사 38 보병제3연대제6중대장 안도 테루조(安藤輝三) 보병대위, 육사40 토요하시 육군사관학교 소속 타카시마 쓰기오(竹嶌継夫) 보병중위, 육사 41기 보병제1연대 소속 쿠리하라 야스히데(栗原安秀) 보병중위 12, 사형.

육사 47 보병제1여단 소속 이케다 토시히코(池田俊彦)  4, 무기징역.

신중파로써 거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핵심이 되었던 주동자인 육사 33 보병제1연대중대장 야마구치 이치타로(山口一太郎)보병대위, 무기금고형.

배후연계세력으로 지목되었으며 이들의 사상적인 근원이 되었던 키타 잇키(北一輝),  니시다 미츠기(西田税), 사형.

 

그렇게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하필이면 모두들 오카다 총리가 죽은  알았기에 쇼와 천황이 내각 내무상 고토 후미오를 임시총리에 앉힌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의형제의 죽음과 이어지는 탄핵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카다 총리는 사건 열흘 후인 3 8일에 사임을 선언하고 말았다.

일본의 정치는  이후로 계속해서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후임이었던 히로타 고키(廣田弘毅)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여 11개월 만에 사임해 버렸고, 그가 사임한 이후 이런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

 

우가키 가즈시케(宇垣一成). 조선의 총독을 지내고  후에 총리 대신이 되겠다며 그는 총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천황의 부름을 받아 도쿄에 돌아와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군복을 입은 남자가 찾아왔다.

우가키 선생,  육군에서  헌병감이오. 귀공이 전에 육군장교단에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아실 거라고 믿소.”

우가키는 예전에 군대를 축소시키면서 21 사단  4 사단을 날려버린 전력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는  꺼내는 것이오?  지난 일이잖소.”

군인은 말이 길어지는  싫어하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육군 지도부의 뜻이오. 내각을 조직하지 마시오.”

나보고 지금 총리대신이 되지 말라는 이야기요?”

그렇소.”

당혹스러운 기색이 우가키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무슨 소리요? 나는 일평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해 왔소. 천황 폐하의 부름이시오. 천황 폐하가 원하는 일이란 말이오.”

 그러시다면 굳이 작년 2월의 일을 떠올릴 것도 없을  같군. 우리로서는 당신 밑에서 일할 장교는 아무도 없소이다.”

뭐요?”

당신이 조직하는 내각에서 일할 육군대신은 없다는 말이오. 이건 군부의 의지요. 그러니  생각하시오.”

“…”

그렇게 말하고 헌병감은  버렸다.

우가키는 고민에 잠겼다. 일생 동안 바래 왔던 총리직이었고,  번이나 깨진 총리의 꿈이 이번에는 드디어 실현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육군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었다. 작년 2월은 몇몇 청년 장교들의 반란이었지만 이번에는 전국적인 반란이 것이 뻔했다.

우가키는 어쩔  없이 내각 조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하야시 센쥬로(林銑十郞) 총리가 되었고, 허수아비였던 그의 뒤를 이어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총리가 되었다. 거대한 어둠이 이제 조금씩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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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 만의 연재더군요.

워낙 정신없이 지나간 나날들이어서 도저히 답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12월 5일 발표, 12월 17일 기말고사. 게다가 여기는 3.0/4.3 이하면 학사경고에 2회 학사경고시 제적이라는 크리티컬 룰이 있어서 무조건 살아남아야만 했던 시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죠. 어쨌든 한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키보드를 꺾었다가, 막상 쓰고 나니 이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전 사실 자체에 감정묘사라는 프레임을 넣는 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극도로 사실을 추구하는, 어쩌면 역사서를 그저 조금 더 쉽게 읽도록 하는 정도뿐인 묘사를 하고 있을 뿐이라, 다른 타 엔하인들이 쓰시는 소설에 비해서는 필력도 떨어지고 읽는 맛도 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제 필력의 한계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역사소설도 어느 분들은 감질나게 쓰지 않습니까. 나관중이라던지, 나관중이라던지, 나관중이라던지...

이 사건에 관한 자료를 뒤지느라고 일본어 위키백과를 뒤져야 했습니다. 전 일본어를 절반 정도 독해할 수 있습니다. 한자를 그래도 조금 알고 있는 터라(대충 3~4급 정도 됩니다) 조사만 조심하면 한자로 뜻을 추정해서 내용을 읽을 수는 있거든요. 발음을 못 할 뿐이지(...) 물론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하여간 고생 좀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어디를 공격하고 어디 소속이었으며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는 전부 사실입니다.

그리고 총리를 구하기 위해서 몸을 던진 의제의 이야기도 사실입니다.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님을 여러 번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휴재가 길어졌던 이유 중에는 글이 도저히 안 써졌다는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이번 글은 약 3시간 정도에 걸쳐서 한 번에 써내려간 겁니다. 문자 그대로 일필휘지입니다만, 그건 제 글 실력이 짧아서일 따름이라, 답답하네요. 도움을 주실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코멘트라던지...

1권 폭풍 전야 – 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3)

 

 

민주주의란 때로는 피로 목욕을 해야 하는 것.”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마드리드 전황은 비록 답보 상태라고는 했지만, 전황은 착실하게 좋아지고 있었다. 방 안에 놓인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프랑코는 다음 움직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북쪽의 공화국군 잔당을 쓸어내고 동진해서 지중해를 장악하면 처음에는 그토록 보이지 않았던 승기도 잡아낼 수 있다. 비록 이쪽의 해군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이쪽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돕고 있고, 더구나 공화국의 해군은 지휘관이 없다. 포섭했던 지휘관이 모조리 수병들에게 사살당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지만, 영국도 프랑스도 돕지 않는 상황에서 지중해를 장악할 수 있다면 공화국군을 말려버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결국은 바르셀로나가 문제란 말인가.”

이런 점에서 지난해에 실패했던 바르셀로나 반란은 뼈아픈 것이었다. 일거에 지중해를 장악할 발판을 내준 셈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은 팜플로냐를 점령해서 빌바오와 사라고사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만, 시간을 주면 언제 힘을 키워서 다시 팜플로냐가 점령당할지 모른다. 위치상 팜플로냐는 샌드위치에 끼인 격이라 양면작전을 사용한다면 문제가 될 가능성마저 있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는 에스파냐 제2의 도시였고, 더구나 빌바오를 정리하지 않으면 배후의 적을 놓아두는 셈이니 빌바오를 정리하지 않고 동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마드리드의 상징성이야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인 만큼 그는 마드리드에 남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대신 북쪽에 몰라 장군을 파견해서 북쪽 전선을 정리하도록 주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드리드 전선이 고착화된 이상, 그로서는 차근차근히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했다.

 

…”

콘도르 군단의 사령관인 휴고 슈페를레 중장과 리히트호펜 중령은 날아온 전보를 보고 상의를 하고 있었다. 다음 작전 계획을 짜기 위해서였다.

토마 중령의 생각은 어떤가?”

“3면에서 공격을 시작하면 우리가 질 수 없는 전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소련제 전차가 성능이 상당히 뛰어난데다가 우리의1호 전차로는 저들을 상대하기는커녕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점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군의 차례로구만.”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지요.”

그러면서 리히트호펜은 지도의 한 지점을 손으로 짚었다.

여기, 이 지점입니다. 몰라 장군이 요청해 온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3 31일을 기해서 공격을 시작한다고 하니 그 때 맞춰서 폭격하면 될 겁니다.”

요즘 날씨가 좋지 않아서 걱정되는군.”

전쟁에는 여러 변수가 있는 법입니다. 몰라 장군도 그 점은 이해하겠지요.”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라면 이 지점이 전략상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 마을이?”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동서의 연결을 끊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팜플로나에 있는 아군은 전략적으로 양면의 공세를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양쪽의 연락을 방해하고 진행될 공세를 사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일은 적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쪽에 적의 예비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증원을 막아야 공격이 수월해질 겁니다.”

그렇군. 좋아. 일단 이 공세를 진행하고 보자고.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폭격을 개시하도록.”

 

상황은 암울했다.

북부 공화국군을 이끌고 있는 프란시스코 야노 데 라 엔코미엔다 장군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보급로도 차단당했고, 지브롤터를 차단당했기 때문에 본국으로부터의 보급 또한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에스파냐 공화국군의 공군은 약했다. 공중수송은커녕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전선이 가로로 길게 놓여 있는 탓에 막아야 할 요충지도 한둘이 아니었다. 서쪽으로는 오비에도가 이미 함락 직전이었고 동쪽으로 가는 길목은 이미 차단당했으며 남쪽으로는 부르고스 방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적까지 상대해야 했다. 비록 수는 이쪽이 우세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그렇듯이 수만 많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어두운 얼굴에 그늘이 더더욱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한숨을 내쉬면서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보급품의 부족, 보급로의 차단은 사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조금씩 그들은 항전할 의지를 잃어 가고 있었다. 지중해의 비스케이 만 방면도 어느새 프랑코의 함대가 장악해 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전령은 그저 좋지 않은 상황을 늘어놓는 정도에 불과했다.

부관!”

! 무슨 일이십니까?”

이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동쪽의 빌바오 인근에 있는 예비대를 불러오도록.”

엔코미엔다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4 26, 바스크 동쪽의 어느 한 작은 마을.

전군, 서둘러서 빌바오로 이동하라!”

바스크 주둔군 사령관이 급하게 명령을 내리면서 병사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는 답답한 표정으로 하늘을 살펴보았을 뿐이었다. 적에게는 공군이 있고, 우리에게는 없다. 공화국군의 공군은 없다시피했다. 그런데 이 바스크 주둔군은 말이 군대지 사실상 민병대나 다름이 없었다. 당연히 공군의 공격을 막을 방공포대 같은 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날씨라도 궂으면 비록 병사들은 고생하긴 하겠지만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하늘이 맑았다. 2주 전만 해도 그토록 비가 내려서 서쪽에서 공군이 활약할 수 없었다고 하건만, 이 날만큼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적군이다! 적의 공군이다!”

누군가의 외마디 비명이 울려퍼졌다.

 

리히트호펜은 책상을 내리쳤다.

지금 장난하나! 공군 조종사들은 대체 눈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부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대체 그 많은 다리를 하나도 격파하지 못했다는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 조그만 마을을 폭격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것인가!”

진정하게, 중령.”

옆에서 슈페를레가 격분한 리히트호펜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적은 민병대야. 폭격 따위는 겪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일세.”

하지만 이대로라면 전략적으로 이 마을을 폭격하는 이유가 없게 되지 않습니까? 장군님,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 일단 진정하고, 내 계획을 말해 주지. 지금부터 가용한 예비대를 모두 동원해서 마을을 무자비하게 폭격하게나.”

? 아니, 하지만…”

들어 보게나. 적이 민병대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그들은 하늘에서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 아무리 사기가 높다 한들 무자비한 폭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나? 자연스럽게 그들은 사기도 저하되고 혼란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할 걸세. 게다가 민병대인 만큼 시가지가 파괴되고 시민들이 폭격으로 죽어가면 그들의 심리적 충격은 훨씬 더할 거란 말일세.”

, 그거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곧 시행하겠습니다.”

흐흐,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그 예비대가 민병대라서 다행이지, 공화국군 같은 정규군이었으면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네. 공병대라도 붙었으면 우리는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통이나 프랑코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을 거 아닌가.”

슈페를레가 음흉하게 웃었다.

 

모두들 피해! 건물이 무너진다!”

아아악!”

, 물을 가져와! 건물에 불이 붙었다!”

여기저기서 아비규환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강 쪽으로 집중되던 폭격이 어느새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폭발로 인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은 주로 시민들이었다.

서둘러서 이 곳을 탈출해야 한다! 모두 정신 차려!”

사령관은 그렇게 병사들을 호령하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뒤로 시민들의 비명 소리와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무자비한 폭격으로 이미 아군의 통제는 조금씩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무고한 사상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병사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무엇들 하나! 정신들 차리고 움직여야 산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하하라!”

아무리 호령해 봐도 이미 병사들은 혼란 상태에 빠져서 지시를 듣지 않고 있었다. 귀를 막고 주저앉는 병사, 탈영하는 병사, 하늘에 대고 의미없이 총을 갈겨대는 병사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방공포대는커녕 적의 공군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 하나도 없다. 무기고는 이미 파괴되었고, 장비는 빈약했다. 시민을 지키기는커녕 아군의 몸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웠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왔고, 적의 공군에 대한 분노가 몸을 삼켰다.

사령관이 할 수 있는 것은 무너져 가는 게르니카를 바라보며 그저 주먹을 움켜쥔 채 흐르는 눈물을 참는 것뿐이었다.

 

전쟁이 길어지고 전선이 넓을수록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내부의 적이다. 당장 공화국군도 내부에 적이 있다는 몰라 장군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집어져서 적을 눈앞에 두고 내전이나 벌이고 앉아 있었으며, 전선이 넓으니 자기보다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라도 등장했다가는 혁명군 총수의 위치에 있는 자기 자신의 위치도 위협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의 눈에 거슬리는, 또는 위협이 될 만한 경쟁자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알아서 사라져 주었다는 것이다. 팔랑헤 당의 지도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는 이미 손을 써서 처형당하도록 했고, 자신을 지지해 줄 자본가를 대표하던 자본가 당의 당수 힐 로블레스는 외국으로 도피했으며, 카리스마가 있던 호세 칼보 소텔로는 이미 암살당했다. 마누엘 고데드 요피스는 바르셀로나 반란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처형당했고, 호세 산훌호는 비행기가 추락해서 사망했다. 남은 것은 공화국군에 떠밀려서 퇴위한 왕 알폰소 13세와 왕위를 사칭하고 다니는 하비에르, 북쪽 전선을 담당하는 에밀리오 몰라, 그리고 서남부를 장악한 케이포 데 야노였다. 북쪽의 전선과 서남부의 전선 둘 중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혁명 자체가 틀어질 위기가 생길 수 있으니만큼 그쪽을 건드리는 건 절대 금물이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내부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면, 먼저 왕족의 손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부관, 있는가?”

“말씀하십시오.”

“지금 즉시 알폰소 13세와 하비에르의 동태를 살피고, 혹여 국내로 들어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차단하도록.”

“알겠습니다.”

대답한 부관이 나가자마자 헐레벌떡 전령이 뛰어들어왔다.

“뭔가?”

“자, 장군! 큰일났습니다! 몰라 장군이 비행기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이런 걸 두고 손 안 대고 코를 푼다고 하던가. 어차피 몰라의 군사적인 능력은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뜻밖의 불행, 또는 행운을 만난 프랑코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다. 후임은 나중에 알려줄 테니 전령은 대기하고 있도록. 나가 보게.”

“옛!”

전령이 나가고 혼자 남은 프랑코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서남부만큼은 비록 그가 어찌할 수 없었지만, 일단 에스파냐를 장악한 후에 천천히 서둘러도 늦지 않다. 위치상의 문제로 몰라 휘하의 장교들은 프랑코에 소속될 것이 뻔했고, 그것은 곧 군 내의 자신의 입지가 강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화국군은 점점 밀려 가고 있었다. 그들이 7월 초에 계획하고 실행했던 공세였던 마드리드 전방에서의 브루네테 전투는 그나마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미약한 공군력을 모두 날려버림과 동시에 지킬 병력이 없어서 군을 후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와 버렸고, 아스투리아스에서의 패전은 서북부의 전선이 말끔히 정리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하지만 3월의 과달라하라 전투에서 이탈리아 의용군을 상대로 이긴 전적이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패한 건 아니었다.

작전 회의에서 후안 에르난데스 사라비아 장군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걸 수 있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이 테루엘이 가진 의미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테루엘은 적의 아라곤 공세의 상징과도 같은 지점입니다. 하지만 톡 튀어나와 있어 삼면이 우리 군대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따라서 점령하기도 쉽습니다. 게다가 여기를 잡으면 북쪽의 바르셀로나와 남쪽의 아군과의 연계가 짧아져,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기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균형추를 맞출 수는 있습니다. 전해오는 첩보에 의하면 12 18일에 과달라하라 방면으로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된다고 하니, 그 직전인 12 15일에 공격해야 적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겁니다.”

작전회의석상에 앉은 장군들은 모두들 결연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이 공세만큼은 성공시켜야 했다. 공화국군이 걸 수 있는 마지막 도박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아무 것도 없다. 바르셀로나가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고 그렇게 되면 지중해가 넘어간다. 공화국군은 보급을 받지 못하고 전멸할 것이 뻔하다. 모두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건 도박이었다.

그 해 겨울은 스페인으로서는 20년 만의 강추위였다. 그 강추위만큼이나 비정한 전장에서, 그들은 승리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뭐라고!”

테루엘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에 프랑코는 경악했다. 설마 이 정도 공세를 그것도 초기에 아무런 공중 공격이나 심지어 포병대도 없이 빠르게 진행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전해오는 전령들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의 공세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했다고 합니다. 적의 사령관은 사라비아 장군이며, 공세는 엔리케 리스터 장군이 지휘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병력은 얼마나 있나?”

 10만 명 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테루엘 쪽의 병력이 채 1만 명이 못 되는 상황입니다. 적의 병력은 약 4만 정도로 추산됩니다.”

제길, 과달라하라 공세는 취소해야겠군. 레이 다르코트 장군에게 즉각 전령을 보내라. 어떤 일이 있어도 테루엘을 사수하라고 전하도록!”

프랑코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다 잡은 전쟁인 줄 알았건만 아직 상황은 그렇게 낙관할 때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양군의 상황은 끔찍했다.

과달라하라 공세가 취소 완료된 것은 공세 시작 8일 후인 23일에서였고, 지원 공격은 29일에서나 이루어졌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해의 겨울은 너무나 추웠다. 영하 18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끔찍한 온도 속에서 장비는 얼었고, 많은 병사들이 동상에 신음했으며, 얼어붙은 사지는 아예 절단해내야 했다. 이 때문에 반란군의 공세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테루엘을 지키던 반란군의 수장인 다르코트는 테루엘 대주교와 함께 항복하고 말았다. 1938 1 8일의 일이었다. 공격은 성공했다. 이제는 지키는 일만 남아 있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프랑코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에 맞서 공화국군은 국제여단까지 끌어들여가면서 저항했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차근차근히 진격해 오는 반군에 맞서 공화국군은 강력한 저항을 시도했다. 그렇게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는 전투가 겨울에 벌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반군은 테루엘의 북쪽을 기습해 버렸고, 공화국군이 허를 찔리면서 북쪽의 병사들이 모두 후퇴하고 도망치면서 상황은 기울어졌다. 주력이 남쪽인 상황에서 벌어진 공세에 공화국군이 치명타를 얻어맞은 것이었다.

얄궃게도 2 18일이 되자 상황은 완벽하게 반대가 되어 있었다. 수적으로 불리한 공화국군이 테루엘의 요새에 포위되어 있었고, 결국 사라비아 장군은 이틀 후 총퇴각 명령을 내렸다.

전투가 지나간 자리는 끔찍했다. 테루엘 시내에 남겨진 공화국군의 시체만 세어도 무려 1만 구가 넘어갔다. 양군의 사상자는 모두 5만 명을 넘어갔다. 양군이 합쳐서 도합 14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다고 추산되는 이 전투의 결과는, 비록 초반에 테루엘을 내주기는 했지만,완벽한 국민당군의 승리였다. 공화국군은 그들이 가진 물자를 모두 소모했고, 동북부도 이제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운명은 단 하나, 멸망뿐이었다.

 

1년 후, 1939 4 1.

공화국군이 벌인 마지막 저항이었던 아라곤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에브로 강에서 또다시 피가 강을 흐르는 대혈전을 벌인 끝에 마침내 최종 공세를 완료한 프랑코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은 성공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 덕분에 마침내 그는 독재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알아서 자멸해 준 공화국군  패배하는 와중에 쿠데타까지 일으켰으니 협상 같은 건 더더욱 할 필요가 없게 된 일이었다  덕분에 그는 이제 명실공히 스페인의 최고 자리에 올라 있었다. 비록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폐위된 알폰소 13세에게 몰수된 재산을 돌려주고 시민권까지 발급해 주었지만,그가 돌아온다고 해서 프랑코의 위치가 흔들릴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벌이는 잔혹한 총살과 처형, 그리고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은 교회와 우익 매체로부터 에스파냐 내부의 병적인 요소들을 척결하고 에스파냐를 정화한다는 축복을 받아가며 알아서 척척 잘 자행되어 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 가고 있었다. 공화국군이었다는 미명 하에, 프랑코를 반대한다는 미명 하에 여기저기서 하루에도 수백 명씩 총살당하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아는 프랑코였다. 어차피 외국에 알려진다 해도, 미리 그 전에 선수를 쳐둔 것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걱정할 것은 없다. 카톨릭 교회를 상대로 공화군이 저질렀던 각종 잔혹행위를 선전함으로써 영국과 프랑스가 등을 돌리게까지 만들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제부터는 그저 은폐하면 그만이다.

프랑코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그의 방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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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일이 몹시 바빠서 연재가 거의 일 주일 가량 늦어졌네요. 어쨌든 속에서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못 하고 있던 걸 깔끔하게 끝낸 기분이라, 조금 낫군요.

실은 이번에 다룬 게르니카 폭격은 저번 회차에서 다뤘어야 했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나, 흐름으로 보나, 게르니카를 저번에 다루고 이번에는 테루엘 공세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제가 소설을 쓰는 게 처음이라 분량 조절이 쉽지 않더군요.

에브로 공세가 사실 테루엘 공세보다도 더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공세였는데, 이걸 분량상 그냥 넘기게 되어서 조금 답답하긴 합니다. 오늘따라 글이 잘 안 써지기도 했구요. 좀더 잔혹하게, 좀더 리얼하게 전투를 묘사했어야 했다는 압박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네요. 쓰다 보면 나아지겠죠.

 1권 폭풍 전야 – 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백기완

 

 

한 무너져 가는 건물에서 급하게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기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가끔 종이를 빼서 찢어버리면서 정열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 남자의 직업은 신문기자였다. 책상 한 켠에는 무기가 놓여 있었다. 언제 무기를 들고 나가야 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전에 이 투고를 빠르게 끝내야 한다. 그런 압박감에 시달린 채로 계속해서 그는 미친 듯이 타자기를 두들겼다. 어째 오늘따라 오타가 심하다. 지우고 또 지우고 찢어버리고 하다가 드디어 한 편의 그럴듯한 르포 기사를 쓰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골목에서 갑자기 총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불길하게 끼기긱거리는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담배를 한 번 깊게 빨았다가 내쉰 후, 그는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와 완성한 기사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뭔가에 홀린 듯이 셔터를 누른 후, 급히 뒤돌아서 후퇴하는 시민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진이 어떻게 인화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죽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면 이 일도 헛된 일은 아니니라. 하지만 한 켠으로는 여전히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사진에만 목숨을 거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시민군의 대열에 진작에 총을 쏘고 합류했어야 했다는 자책감과 괴로움이 그를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었다. 이 사진, 이 기사로 꼭 세계에 이 일을 알리리라. 그렇게 해서 죽어간 저들에게, 저 흐른 피에 속죄하리라. 그는 그렇게 입술을 꽉 깨물면서 뒤로 뛰어갔다.수는 시민군이 많았지만, 저 앞에서 다가오는 괴물 앞에서는 그의 힘은 무용지물이었다.

훗날, 그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쓰게 된다. 그 이후로 수십 년간 베스트셀러가 된 그 책의 이름은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단편소설이었다.

 

한 시간 전, 마드리드 인근의 한 요새.

여러분! 과달라하라가 해방되었습니다!”

한 남자가 가운데 연단에 서서 시민군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적의 수괴인 마누엘 요피스를 잡아 처형했고, 동쪽은 안전합니다! 우리의 승리는 확실한 것입니다!”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그가 다시 손을 들어 군중을 진정시킨 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소련에서 우리를 돕기로 했습니다! 전세계 최강국 중 하나인 소련이 우리를 돕는다면, 반란군을 쓸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언덕을 지키고, 이 도시를 피를 흘리며 지켜간 것이 헛된 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군중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그렇게 환호하는 와중에 한 사람이 먼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우리를 돕기 위해서 전차가 오고 있어요!”

멀리서 굉음을 일으키고 모래바람을 일으키면서 전차 사단들이 천천히 진군해 오고 있었다. 군복을 입고 있었긴 하지만 스페인 반란군의 군복은 아니었다.

소련군인 것 같아! 군복 멋있다!”

, 저 전차들, 처음 보는 것들인데? 우리 나라에서 보던 부실한 전차와는 차원이 달라 보이잖아!”

그러게, 겉보기에도 튼튼해 보이고 말이야.”

그렇게 사람들이 수군대는 동안 전차들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걸.”

안경을 낀 한 남자가 묘하다는 표정으로 전차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뭔 일인데 그래?”

내가 잠깐 소련에 있을 때 봤던 전차들은 전부 다 빨간 별을 전차에 박아넣고 있었거든, 근데 그런 게 안 보여서 말야.”

에이, 정비를 받으면서 지워졌던가 아니면 실수로 빠진 거겠지.”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그들은 전차가 시내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전차들만 있다면 시내를 방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시민군은 연막탄을 하늘에 쏘는 것으로 전차가 들어올 곳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오던 전차들이 이동을 멈추었다.

대장님! 전차들이 오다가 멈추는데요?”

 이상하네? 그냥 밖에서 적군을 막을 생각인가?”

혹시 대장님께 연락 온 게 있었나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우리는 의용군이야. 이제 저들이 오면 직접 만나야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겠지.”

대장님, 근데 전차들이 들어올 생각을 안 하네요?”

이상하게 여긴 의용군 대장이 확성기로 전차에 대고 외쳤다.

어서 들어오시오! 같이 반란군에 맞서 싸웁시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이 조용히 있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전차의 왼쪽 아래에 있던 해치가 열렸다. 거기에는 총이 한 대 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전차의 포신이 불을 뿜었다.

 

아아악!”

, 저게 이쪽으로 온다!”

모두들 피해! 지금으로서는 맞설 수가 없어!”

의용군은 급하게 뒤로 후퇴했다. 전차가 쏘아대는 기관총은 그들이 지키고 있던 곳을 피로 물들였고, 전차의 포신에서 들려오는 굉음은 그들의 가슴 속에 깊은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곧 포탄이 터지면서 생긴 매캐한 먼지들이 시야를 가렸다. 이래서야 뭘 해볼래야 해볼 수가 없다.

도대체, 도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분명히 정규군의 전차는 아니었다. 미리 이것저것 꼼꼼히 체크해 본 그였다. 정규군의 군 편제, 주요 장비, 특히나 지금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전차의 사진까지 여기저기에 부탁해서 알아냈다. 신문기사에서, 사열식에서 나왔던 전차의 사진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에스파냐의 전차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리고 소련이 우리를 돕겠다고 했었다. 전차가 올 곳이 없는데, 도대체 저들은 어디에서 저런 전차를 구해서 우리를 공격한단 말인가? 회한과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심하게 맑기만 했던 날이었다. 땅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흐르는 피와 어울리지 않게 푸르기만 했던 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늘에서 웬 비행기들이 굉음을 일으키며 몰려오고 있었다.

 

수도를 빼앗기가 쉽지 않소이다.”

예상보다 시민군의 저항은 거셌다. 단순히 공격하면 될 줄 알았던 반란군 사령부의 장군들에게서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사람, 프란시스코 프랑코만이 마치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수도를 점령하지 못하면 행정업무를 마비시킬 수 없고, 우리의 명분을 제대로 세울 수도 없소이다. 수도를 반드시 탈환하고 저들을 수도에서 몰아내야 수도를 버린 정부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고, 또 수도에 있을 공장들도 우리가 쓸 수 있으며, 수도의 물자와 인력 또한 풍부한 것이오. 전략적으로 수도가 가지는 가치가 막대할진대, 이래 공격이 지지부진하니 참…”

안절부절못한 듯이 서성이고 있는 몰라 장군에게 프랑코 장군이 한 마디를 던졌다.

저들은 비록 물자와 인력은 좀 있다고는 하나, 장비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앞서고 있소. 걱정할 것이 없소이다.”

장군, 지금 이렇게 낙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소? 저 바스크 방면의 오비에도(Oviedo)와 빌바오(Bilbao)의 산악 지역에서도 저항이 거세고, 우리 혁명군은 우엘바(Huelva)와 카디스(Cadiz), 그리고 세비야(Sevilla) 방면에 일부 군대가 찢어져 있어서 전략적으로 불리하단 말이오!”

아 그것 참, 걱정 마시라니까, 거 참 침착하지 못하시군…”

프랑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파이프를 한 번 빨았다. 지켜보고 있는 몰라는 결국 분통이 터졌다.

도대체 믿는 구석이 뭐요! 내 장군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아주 늦게 일으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소! 장군은 너무 굼뜨단 말이오! 뭘 믿고 그리 느릿느릿하게 계시오? 혁명은 시간이 필수인 걸 모르시오?”

몰라 장군, 아직도 감이 안 잡히시오?”

화를 내는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본 프랑코는 이윽고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이 혁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저들의 예비대를 조사해 두었소이다. 4만이 넘는 예비대가 저들의 손에 있었소. 물론 대다수는 노동자들이지만 말이오. 그런데 저들은 그걸 사용할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소이다. 저들이 그 예비대를 사용했다면 우린 진작 부르고스(Burgos)는 물론이고 라 코루냐(La Coruna)까지 내줘야 할 판이었소. 저들의 운용상의 미숙함이 저렇게 뻔히 보이는데 우리가 이기지 못할 리가 없잖소?”

전략적인 불리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

우리는 남부 최대 도시인 세비야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소이다. 멋진 작전이었지. 우리가 마치 물러갈 것처럼 한 다음 내부의 동조자를 이용해서 군사를 밖으로 빼내고, 그 틈에 우리가 도시를 점령해서 섬멸하는 기막힌 작전이었단 말이오. 길을 막고 있는 바다호스(Badajoz) 정도로는 세비야의 인력과 공업력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고, 이는 남부 말라가(Malaga) 일대도 마찬가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안심은 되겠소이다만 그래도 이거 너무 수도 공격이 지지부진하오이다. 게다가 겨울이 오고 있어요.”

, 걱정하지 마십시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공격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약점을 찾아볼 수밖에요. 독일군의 지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게요.”

그나마 저 콘도르 군단(Legion Condor)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올시다. 독일군에게 이것 참 고맙게 되었소. 우리에게 전차는 물론이고 폭격기까지 지원해 주다니 말이오. 흐흐흐흐…”

 

폭격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무자비한 폭격으로 인해 이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길가에는 총에 맞은 시체, 폭발로 인한 시체, 화재로 인해 불타 죽은 시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빌헬름 폰 토마 중령이 이끄는 1호 전차부대와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중령이 이끄는 폭격기 대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포격과 폭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틈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도록 요새는 아무런 약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공화국군도 상태는 심각했다. 이미 인명 손실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었고, 이 와중에 어느 흥분한 군중이 1천 명에 가까운 포로들을 죽이는 대학살까지 벌어지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공화국군의 명성에도 금이 가고 말았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몰라 장군은 억지로 병력을 집중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이는 반란군의 피만 불러올 뿐이었다.

게다가 공화국군에는 한 가지 도움의 손길이 도착하고 있었다.

 

콘도르 군단 제1중대, 전차 3대 파손, 1대 이동불가.”

콘도르 군단 제3중대, 전차 2대 파손, 2대 이동불가.”

콘도르 군단 제6중대, 전차 1대 파손.”

계속해서 손실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토마 중령은 들려오는 보고를 들으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부관, 도대체 뭘 했길래 전차들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가?”

전해오는 현장 보고에 따르면, 에스파냐 전차가 아닌 다른 전차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니, 전차를 받을 만한 곳이 있다는 말인가?”

전차 전면에 붉은 별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소련군의 전차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 그것 참 이래서야 어디 길이나 뚫겠나? 리히트호펜 장군 연결해.”

그렇게 말하면서 토마 장군은 예하 부대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교전 중지. 즉시 후퇴하여 재정비에 들어간다.”

 

, 무슨 일이오?”

리히트호펜 중령, 나 토마 중령이오. 이거 도저히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었소이다. 우리 전차의 힘으로는 저 소련군들의 전차를 당해낼 수가 없어요.”

우리 슈투카(Stuka)로서도 정밀 타격은 어렵소이다. 게다가 전차들이 도시를 방패삼아 저렇게 숨어서 포격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도 미칠 노릇이오.”

일단 프랑코 장군에게 잠시 공세를 중지해 달라고 요청해야겠소이다. 저쪽도 몰라 장군이 멍청하게 시가지에 억지로 부대를 투입하는 대실수를 저질러서 손실이 크다고 들었소이다. 이대로는 우리가 당해요. 일단 포위망을 안정화시키는 선에서 이번 공세를 마무리짓도록 하십시다.”

좋소이다. 프랑코 장군에게는 내가 연락해둘 테니 중령께서는 전차부대의 재정비에 착수해 주시오. 필요하면 물자를 본국으로부터 지원받아야 하니 연락을 좀 취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소이다.”

알았소. 세 시간 후에 다시 통화하십시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토마의 표정이 심하게 답답해 보였다.

 

거 내가 뭐랬소. 서두를 거 없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

몰라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창가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프랑코가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쳤다.

, 여기를 보시오.”

이게 무엇이오?”

현 상황을 나타낸 지도이올시다. 바다호스의 공략이 다행히 성공했고, 팜플로나(Pamplona) 일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해서 빌바오 일대의 공화국군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소. 말라가 항도 우리가 잡았으니 제해권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오.”

그렇다면 장군의 생각은 무엇이오?”

이 마드리드는 손쉽게 떨어질 곳이 아니외다. 일단 마드리드 주변을 차근차근히 정리한 다음, 포위된 마드리드에 일제 공격을 가하는 그런 방법을 써야 할 것이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바로 이 도시가 될 것이오.”

프랑코가 손으로 짚은 도시는 동북쪽의 사라고사(Zaragoza)였다.

이 도시를 공략하는 데 성공하면 레리다(Lerida)와 바르셀로나로 공격을 이어갈 수 있고, 우리 에스파냐의 동북쪽 항만을 장악함으로써 적의 지원을 더더욱 옥죌 수 있소이다. 운이 좋으면, 퇴로까지 차단해서 섬멸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오.”

내 장군의 말을 듣지 않아 이번 마드리드 공격에서 큰 피해를 보았소이다. 일단 장군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소.”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일단 북쪽의 비토리아(Vitoria)로 가 주시오. 빌바오 공세를 마무리짓고 저들을 섬멸할 사령관이 필요하니 말이오.”

 

에스파냐 북쪽의 바스크, 빌바오.

이 곳의 사령관인 아돌포 프라다 바케로 장군은 북부에 고립된 채 지원군도 없이 고독하게 싸우고 있었다. 사실 팜플로나 인근의 길목을 지키는 것은 일단 피레네 산맥이 험준한 덕분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고, 게다가 이 길목을 통해 바르셀로나 방면으로부터의 보급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빌바오 내부에서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설상가상으로 군 내부에서 동조자가 나와 버린 덕분에 보급은커녕 한정된 물자를 가지고 게릴라전을 하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불과 반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 상황까지 몰리지는 않았다. 반란군의 수괴 몰라라는 놈이 라디오에서 지껄였던 그 말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랐다.

 

4개월 전의 일이었다.

프랑코가 한창 마드리드 공격 준비로 분주할 때, 몰라가 갑자기 사령부로 찾아와서 대뜸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던 것이다.

공격하기 전에 내 라디오에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소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러니까…”

귀에 대고 속닥이는 몰라의 말을 듣는 프랑코의 얼굴에서 순간 음흉한 웃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장군은 차라리 정치가를 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단 말이오. 몰라 장군, 기대하겠소이다.”

장군, 그거 지금 칭찬으로 하는 말이요, 아니면 나를 놀리는 말이요?”

껄껄 웃으면서 몰라가 프랑코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특별회담 형식으로 진행된 라디오에서는 몰라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마드리드를 공격할 네 개의 사단이 있소이다. 첫 사단이 쓰러지면 둘째 사단이, 둘째 사단이 쓰러지면 셋째 사단이, 그마저도 쓰러지면 넷째 사단이 계속해서 공격할 것이오. 뿐만 아니라 이미 곳곳에 다섯 번째 사단이 숨어 있다가 우리가 공격하는 즉시 반기를 들고 일어설 것이니 우리 혁명군의 승기는 완벽하고, 저 무능한 정부군에게는 승기가 없소이다. 혹여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저항군이 있다면, 부질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생업에 종사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바이오.”

이 말 한 마디에 전국에 있는 공화국군의 사령부는 그야말로 뒤집어져 버렸다. 내부 반란군을 색출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실시되었고,이 과정에서 그간 약한 연대를 유지해 왔던 공화파와 무정부주의자간의 협력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심지어 바르셀로나에서는 공화파가 반란을 일으킨 와중에 자기들끼리 내전을 치루기도 했다. 결국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여기저기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겠다고 선언한 지역이 있었다. 이 바스크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보급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케로 장군은 답답한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가올 적의 공세를 대비해야 하고, 만약을 대비해 퇴로도 확보해 두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며 일어서는 그의 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비참해 보였다. 그렇게 모로코에서 처음으로 반란이 일어난 지 벌써 8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지지부진한 전투는 언제 끝날 것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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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실제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페인 공화국군을 돕기 위해 의용병으로 참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주옥같은 소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마초였던 그의 단면을 볼 수 있달까요.

적을 앞에 두고 지들끼리 내전을 일으켰다는 에피소드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바르셀로나가 넘어가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양측의 전술으 개판이었음을 보여 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콘도르 군단의 주력전차였던 1호 전차는 그야말로 소형전차, 즉 탱케트(Tankette) 수준이라서 전차전은 어림도 없었고 보병지원 정도 외에는 써먹을 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현대 전차의 정석인 레오파르트2라던지 티거 아인스 같은 걸 개발해낸 독일군의 기술력치고는 의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제로 그나마 상대방과 대등한 선에서 교전이 가능했던 전차는 4호 전차(!)쯤 가서나 가능했습니다. 심지어 소련군 상대로는 그 4호 전차도 KV 쇼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독일군이 전차전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전차는 판터와 티거뿐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위에서 허구로 된 것은 소련군이 독일군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것뿐. 실제로는 소련군이 저 공화국군의 반란군 상대 학살을 자행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1권 폭풍 전야 – 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

 

 

“모든 정적들에게 용서를 빌며 정적들을 진심으로 용서한다.

-  프란시스코 프랑코

 

 

콧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바다를 보고 서 있었다최연소 소령최연소 장군이라는 기록적인 타이틀에 이어 전 군을 호령한다는 참모총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 남자는전쟁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시골에 멀찍이 떨어져서 있었다그럴 만한 위치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아무리 지금의 정권이 그 자신의 반대라도 해도 이건 누가 봐도 너무한 처사였다참모총장의 자리를 내놓고 본국에서 한참 떨어진 섬으로 좌천된 그였다하지만 그는 묵묵했다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장군님.

부관이 그를 불렀다비밀리에 본국으로 보낸 전령이자첩보원이었다그가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기도 했다.

“그래본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장군님의 입장을 대변해 주던 정계의 거물 한 명이 암살당했습니다게다가 살인범을 체포해 보니정부의 경찰이었다고 합니다.

“…”

담배를 한 대 피우고그 곳의 경치를 담아두려는 듯 한동안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던 장군은잠시 후 부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몰라 장군에게 전보를 보내라내용은…”

부관에게 지시를 내린 후장군은 마지막으로 파이프를 깊게 빨았다그가 고대하던 순간이 왔다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기회가그간 찾던 명분이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 줄 만한 순간이 온 것이다게다가 대통령과 총리는 몇 번씩이나 저질렀던 실수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었다지금이라면지금이라면 한 번승부를 걸어볼 만하다제왕이 될지역적이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일말의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일말의 망설임도 없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다하지만 그대로 앉아 있다면이대로 그대로 앉아 있기만 한다면 그저 여기에서 끝날 뿐이다이미 지금까지 수많은 동료들에게도 조금씩 불신이 쌓여 가고 있는 상황그 모든 상황그 모든 불리함을 단 한 번에 해결할 절호의 기회이다모든 것을 걸 만한 가치가 있었다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 날 저녁한 대의 비행기가 조용히 카나리아 제도에서 이륙하고 있었다.

 

“흠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전보를 받은 몰라 장군은 즉시 휘하의 부관들에게 명령했다내용은 간단했다. ‘전군 출동 준비. 때가 온 것이다.

‘그 양반그 동안 어찌나 움직이지 않던지… 한때 우리가 1936년의 미스 카나리아라고 대놓고비판을 해도 아무 말이 없더란 말이야그쯤 되면 뭔가 할 만한 때이기도 한데도대체 그럴 의지가 있기는 한 건가우리가 얼마나 이 날을 고대했나봄부터 7월의 절반이 지나가도록 그 양반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아주 미쳐버리는 줄 알았지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영웅이니 얼굴마담으로 저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애초에 능력이 의심되는 사람이야… 그래도 저 빌어먹을 공화파 놈들을 쓸어버리고 실권을 잡을 생각을 하니흐흐흐이거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음흉한 미소를 지은 직후그는 부르고스(Burgos)로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몰라 장군이다피델 다빌라 아론도 장군을 바꿔 주게.

 

예정대로라면 7 17일 오후 5시에 반란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으나모로코와 본국의 반란 시간에 차이를 두기로 조정했다몰라 장군의 아이디어였다.

“아니굳이 이렇게 시간을 바꿔야 하는 거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에게 몰라 장군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곳에서의 반란과 본국에서의 반란에 시간차를 두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요우선동시에 반란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본국으로 건너가기도 전에 본국의 작전기지가 격파당할 위험이 있소이다아시다시피 우리는 숫자에서 절대적으로 열세란 말이요게다가 시간을 두고 반란이 일어난다면 여러 곳에서 다른 세력들이 추가로 일어날 수도 있고공화파 놈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단 말이오.

“수송함은 다 준비되었겠지요?

“내 장군께서 노닥거리시는 동안 독일 기업의 도움을 좀 받았소이다.

“잘하셨소이제 우리가 받은 수모를 갚아줄 때가 되었구려.

그제서야 프랑코의 얼굴이 펴졌다.

 

다음날 새벽라디오 방송에서 일제히 일기 예보를 송신했다.

“오늘 에스파냐 본국 전역에 걸쳐서 맑은 하늘입니다.”

 

“총리총리이것을 좀 보시오!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대통령이 들고 있던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호외인 것 같았다평소 조용하던 대통령이기에 총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급하게 건네받은 호외를 읽은 총리는 경악했다기사를 읽어내려가는 그의 눈이 미친 듯이 핑핑 돌았고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호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모로코에서 반란이 일어나다!>

…모로코에 주둔 중이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군대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로코에 있는 정부 관저와 방송국을 장악하였으며해당 지역에는 계엄령이 선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몰라 장군은 라디오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

“반대파에 대한 핍박을 일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혼란한 정부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우국 충정의 심정으로 혁명을 일으켰으니국민 여러분은 아무런 근심을 하지 마시고 생업에 종사하여 주십시오우리 혁명군은 정부를 정상화한 후 알맞은 사람에게 정부를 넘길 것입니다.…”

 

“설마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까 했소이다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통령 마누엘 아사냐가 중얼거렸다그 첩보가 사실이었을 줄이야멀리 쫓아낸 것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바다를 사이에 끼고 있기에게다가 영토도 얼마 안 되고 모로코란 땅에는 적당한 공장 같은 것도 없기에 분명히 누가 봐도 본국이 유리한 상황.그런 상황에서 쿠데타를 일으킬 줄은 몰랐다대통령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입니다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발표해야 각지에서 일어난 쿠데타 시도도 무위로 돌아갈 것이고자연히 반란군의 힘이 약해지는 것입니다그렇다면 급히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하하지만…”

“각하시간이 없습니다!

대통령을 총리가 재촉하며 억지로 방을 나섰다뭔가 답답했다불길한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같은 시각마드리드.

“오른쪽오른쪽놈들이 온다!

“여기 지원이 필요하다!

“바리케이드가 무너졌다빨리여기를 지켜야 해!

때맞춰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반란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다비록 가진 자 없는 사람들이었고훈련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그들의 마음 속에는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 더 강했다곧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뭣들 하나저들은 훈련받지도 못한 시민들이야저들을 이기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나!

군단장 호아킨 판줄이 미친 듯이 호령하면서 몬태냐 고지를 향해 공격을 명령했지만 정부군도 아닌 시민군인 주제에 저항은 생각보다 거셌다결국 계속되는 공격 끝에, 더 이상 공격을 진행할 수 없게 된 반란군은 항복해야만 했다하지만 동료들의 피에 흥분한 군중들은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그들에게 총을 난사했다수많은 사람이 피를 뿜으며 쓰러져 갔다첫 전투는 시민군의 승리로 끝났다비록 승자도,패자도 없고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지만.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시민군이 조직되어 싸우고 있었다바르셀로나에서도 시민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마드리드의 시민군은 피로 요새를 지켜낸 직후 가장 가까운 도시인 과달라하라로 진군했다쿠데타의 주범 중 한 명인 마누엘 요피스 장군까지 사로잡아 처형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누가 봐도 반란군이 패배할 것이 자명했다게다가 반란군은 카디스 항과 모로코카탈루냐에 걸쳐 널리 찢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각한 통의 전보가 외국을 향해 발송되고 있었다.

 

“흠… 지원을 요청한다고…”

“비밀리에 온 전보입니다본국에서도 이미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충분히 도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이번에 도움을 주고 스페인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면 우리는 우리에게 우호적인 국가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는 셈입니다.

선전부 장관 괴벨스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승산이 있는 건가이건 아무리 봐도 반란군이 질 것 같지 않은가.

“설령 승산이 없다 하더라도 이번에 여럿 개발된 신무기들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합니다그것만으로도 도울 가치는 충분하고게다가 어쨌거나 공산주의를 몰아낸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에게 체면도 서게 됩니다.

“아 1호 전차 말이지… 트랙터를 개발한다고 위장하면서 개발해야 하는 신세였지그런데이번에 그들을 도우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아닌가육군사령부의 프리취인지 뭔지 하는 그 늙은 멍청이는 계속해서 이런 군사적 도발이 전쟁으로 이어질 경우 우리에게는 막을 힘이 없다고 계속해서 경고해 왔단 말이야참 듣기 싫은 말이지만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더 화가 나는 일이었단 말일세영국이나 프랑스의 반응도 걸리고 말이야.

“저들은 사회주의파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저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없습니다.

“거 그래도 국제법을 위반하는 일이니 우리가 함부로 나섰다가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게 뭔가?

“의용군이란 명목으로 물자를 보내는 겁니다의용군이라면 정규군이 아니니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딱히 우리를 트집잡을 요소도 없고,또한 어쨌든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하게 도움이 될 겁니다.

“오호라그런 방법이 있었군좋아당장 실행하게.

“예총통!

괴벨스가 방을 나간 후히틀러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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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부터 다루는 것에 대해서 좀 의문을 가지실 만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이 듭니다. 히틀러가 총통에 오른 것이 1933년이고, 내부의 반대파를 모조리 싹 쓸어버린 다음, 본격적으로 국제 정세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스페인 내전부터입니다. 이전까지의 독일의 행동 - 베르사유 조약 파기, 로카르노 조약 파기, 라인란트 점령 등 - 은 사실 어떻게 보면 "너희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된단 말이냐"라는, 일종의 불만을 공격적으로 표시한 것이었고, 아차 싶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그 때서야 독일에 대해 유화 정책으로 돌아서게 됩니다(엔하위키 참조). 게다가 세계 대전에 대한 두려움은 그 때도 여전히 존재하던 것이었습니다.


1939년 9월 1일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그 전의 국제 정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1939년의 체코슬로바키아를 이야기하자니 뮌헨 협정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독일이 최초로 외국에 간섭한 스페인 전쟁으로 이야기가 올라가더군요. 사실 지금도 앞에 더 써야 하는 걸 잘라낸 겁니다. 게다가 태평양 전선은 중일전쟁을 이야기해야 하다 보니...


이 스페인 내전을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라고까지 해 두죠. 하여간, 쓰고 보니까 이게 점점 일이 커지네요(...)

소설 제1차 세계대전 - 서장

2013. 1. 21. 01:05 | Posted by Silver Eun

 - 1933, 뉘른베르크.

 

도이칠란트, 에어바헤! (독일이여, 깨어라!)”

남자가 대중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 한때 하켄크로이츠를 조롱하고, 그것을 비난했던 자가 이제는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대중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체구는 작고 다리를 절고 있었건만,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지적하는 자는 없었다. 모두가 숨죽인 채로 뉘른베르크 중앙 광장에서의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군중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콧수염을 기른 남자와, 옆에 살이 남자와, 반대편에 안경을 마른 남자도,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국가 사회주의 혁명은 독일의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규모와 역사에서의 중요함은, 오직 역사 속의 위대한 사건들만이 어깨를 나란히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유럽의 역사와 비교해 보았을 , 혁명을 단순히 다른 혁명과 비교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때로는 자극을, 때로는 에너지를, 심지어 때로는 방법까지 똑같습니다. 하지만 혁명의 기초와, 혁명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 역시 다릅니다. 전쟁과 11 반란 없이는, 일은 일어날 없었을 것입니다. 최소한 일이 없었다면, 혁명을 일으킬 힘도 없었을 것이고, 설령 힘이 있었다고 해도 속도는 대단히 느렸을 것입니다.”

옆에서 콧수염을 기른 남자는 말없이 연설을 듣고 있었다. 역시 스스로 연설에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남자의 연설은, 목소리는, 실로 사람을 그야말로 홀려버리는 마력이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 연설을 듣고 있으면 어쩐지 그의 말이 맞는 같고, 또한 어쩐지 그에게 동조하고 싶어진다. 사람이 그의 추종자라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려운 시간이었던가. 15 , 독가스의 공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한 채로 한참을 누워 있다가 패전 소식을 듣고 며칠을 울었던가. 10 전에는 시위를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수감되었고, 자신의 평전을 처음으로 써서 출판했다. 그러다가 점차 지지를 받아 이제는 독일의 명실공한 1인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의 능력은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너무 얕잡아본 것이 문제였을 .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두 그의 능력이라 생각했다. 독일에서 그를 막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독일은 그의 것이다. 아무도 그의 말을 거역할 없다. 그렇다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연설을 들으면서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 연설자의 이름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였다.

 

 

 

- 1936, 뉴욕.

 

체육관에서 연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경을 중년 신사가 지팡이를 짚고 연단에 올라가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만인지상, 경제를 개선한 대통령, 노동자의 친구라는 슬로건과 함께 번째 임기를 위해 출마한 대통령. 취임 그가 연설 했던 우리가 두려워해야 것은 두려움 자체입니다라는 말은 이제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되어 있었다.

우리 국민들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일을 못하는 정부에 12년간 시달려 왔습니다. 국민들은 정부를 바라보았지만, 정부는 국민을 외면하였습니다. 물신숭배에 눈이 멀었던 9년과 뒤이어 찾아온 고난의 기나긴 3! 증권시세에 미쳐 지내던 9년과 뒤이어 찾아온 식량배급을 기다리는 줄에서의 기나긴 3! 신기루를 쫓아다니던 9년과 뒤이어 찾아온 절망의 기나긴 3! 오늘날 강력한 세력가들은 작은 정부가 최선의 정부라는 자신의 교리 하에 과거의 정부를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여러분은 손가락만 빨고 있는 정부가 아닌 소매를 걷어붙이고 뛰어드는 정부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을 작정입니다.”

안경을 사람은,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지만, 한때 하반신 불수까지 갔던 사람이었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람은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다만, 모습이 노출되는 것은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자존심에 맞지 않았고, 대통령답지 않았다. 불과 16 전에도 병상에 쓰러진 대통령이 있었고, 역시 많은 욕을 먹었던 사실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13 전에 기차 안에서 사망한 대통령은 의사가 절대 무리해서는 된다고 했는데도 측근들이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권해서 연설하러 떠나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던가. 그것을 모를 그가 아니었다. 그것을 몰라서는 되었고, 그렇기에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더더욱 되었다. 어차피 하반신 불수도 이겨내고 비록 조금이지만 걸을 있는 그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아니,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위협하는 , 산업과 금융 분야의 독점, 투기, 분별없는 은행의 관행, 계급간의 대립, 파벌주의, 전쟁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 정부를 자기 사업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적으로 조성된 자금 위에 세워진 정부는 조직범죄집단이 만든 정부만큼 위험한 법입니다. 미국 역사상 그들이 지금처럼 후보에 대항해 이처럼 힘을 모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저를 증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들의 증오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저의 번째 임기를 말하자면, 권력을 탐하는 이기적인 세력들이 적수를 만나게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자 청중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울려 퍼졌다. 연설하는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상도 못할 부정부패. 이제 역사상 가장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남자를 상대로, 그는 16 선거에서 패배한 전력이 있었다. 비록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나왔기에 힘이 약했다고는 하지만, 분한 일이었다. 어쨌든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던 기억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죽었지만, 마치 그에게 복수를 하듯, 그리고 때의 악몽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긴, 저번 선거에서도 상대는 알아서 자멸해 주었고, 자신은 4년간 너무나 왔다. 자신감을 가져도 같다.

청중들도 숨을 죽인 다시 조용히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의 번째 임기는, 자들이 임자를 만난 시기가 된다고 말할 있을 겁니다!”

청중들 사이에서 환호가 울려퍼졌다. 연설자도, 그를 수행하는 수행원도, 자리에 있던 부통령도, 모두가 함박웃음을 머금고 손을 들어 환호에 화답하고 있었다. 훗날 연설은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역사가들에 의해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연설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남자의 이름은 바로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였다.

 

 

 

 

- 1938, 런던.

 

히틀러는 자기가 원하던 것을 모두 가졌습니다!”

콧수염을 기른 멋진 남자가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생긴 얼굴에, 개인적으로도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였으며, 재무장관 시절 대대적인 개혁을 펼쳐 나라의 경제를 구원하고 업적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남자. 언제나 회담 때는 차가운 표정을 짓고 회담을 했으며, 그의 표정만큼이나 냉철한 외교전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생각을 지녔던 그런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 뮌헨에서 돌아온 수상은 군중에게 연설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전도사라도 것처럼.

여기 종이가 하나 있습니다.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과,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지난밤 우리와 독일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양국의 시민들의 염원을 받아들였습니다.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철수하는 조건으로, 수데텐 지방을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수데텐 지방을 독일에게 내준 분명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전쟁을 막을 있다면, 내주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독일은 전쟁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막았습니다. 히틀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졌습니다. 우리 시대에, 전쟁이란 다시 없을 것입니다!”

환호하는 군중들 속에서 조용히 한숨짓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검은 중절모를 쓰고, 체구는 거대했으며,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얼마나 독한 시가인지, 연기마저도 짙어 보였다. 23 , 전쟁에서 최악의 실패를 거둬서 정계에서 물러난 남자는 요즘 철새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었다. 그가 가질 자리는 내각 안에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한적한 시간을 보내다가 오늘 그가 돌아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군중의 일원으로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끝까지 연설을 듣고, 마침내 연설이 끝나자 한숨을 지으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지금 최대의 패배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이것은 다른 시작일 뿐이다.”

 

연설하는 남자의 이름은 네빌 체임벌린, 중절모를 남자의 이름은 윈스턴 처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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