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폭풍 전야 – 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
“모든 정적들에게 용서를 빌며 정적들을 진심으로 용서한다.”
- 프란시스코 프랑코
콧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바다를 보고 서 있었다. 최연소 소령, 최연소 장군이라는 기록적인 타이틀에 이어 전 군을 호령한다는 참모총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 남자는, 전쟁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시골에 멀찍이 떨어져서 있었다. 그럴 만한 위치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지금의 정권이 그 자신의 반대라도 해도 이건 누가 봐도 너무한 처사였다. 참모총장의 자리를 내놓고 본국에서 한참 떨어진 섬으로 좌천된 그였다. 하지만 그는 묵묵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장군님.”
부관이 그를 불렀다. 비밀리에 본국으로 보낸 전령이자, 첩보원이었다. 그가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기도 했다.
“그래, 본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장군님의 입장을 대변해 주던 정계의 거물 한 명이 암살당했습니다. 게다가 살인범을 체포해 보니, 정부의 경찰이었다고 합니다.”
“…”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그 곳의 경치를 담아두려는 듯 한동안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던 장군은, 잠시 후 부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몰라 장군에게 전보를 보내라. 내용은…”
부관에게 지시를 내린 후, 장군은 마지막으로 파이프를 깊게 빨았다. 그가 고대하던 순간이 왔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기회가, 그간 찾던 명분이,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 줄 만한 순간이 온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과 총리는 몇 번씩이나 저질렀던 실수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한 번,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제왕이 될지, 역적이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일말의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대로 앉아 있다면, 이대로 그대로 앉아 있기만 한다면 그저 여기에서 끝날 뿐이다. 이미 지금까지 수많은 동료들에게도 조금씩 불신이 쌓여 가고 있는 상황. 그 모든 상황, 그 모든 불리함을 단 한 번에 해결할 절호의 기회이다. 모든 것을 걸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 날 저녁, 한 대의 비행기가 조용히 카나리아 제도에서 이륙하고 있었다.
“흠,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전보를 받은 몰라 장군은 즉시 휘하의 부관들에게 명령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전군 출동 준비.’ 때가 온 것이다.
‘그 양반, 그 동안 어찌나 움직이지 않던지… 한때 우리가 1936년의 미스 카나리아라고 대놓고비판을 해도 아무 말이 없더란 말이야. 그쯤 되면 뭔가 할 만한 때이기도 한데, 도대체 그럴 의지가 있기는 한 건가? 우리가 얼마나 이 날을 고대했나? 봄부터 7월의 절반이 지나가도록 그 양반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아주 미쳐버리는 줄 알았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영웅이니 얼굴마담으로 저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애초에 능력이 의심되는 사람이야… 그래도 저 빌어먹을 공화파 놈들을 쓸어버리고 실권을 잡을 생각을 하니, 흐흐흐. 이거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음흉한 미소를 지은 직후, 그는 부르고스(Burgos)로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몰라 장군이다. 피델 다빌라 아론도 장군을 바꿔 주게.”
예정대로라면 7월 17일 오후 5시에 반란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으나, 모로코와 본국의 반란 시간에 차이를 두기로 조정했다. 몰라 장군의 아이디어였다.
“아니, 굳이 이렇게 시간을 바꿔야 하는 거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에게 몰라 장군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곳에서의 반란과 본국에서의 반란에 시간차를 두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요. 우선, 동시에 반란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본국으로 건너가기도 전에 본국의 작전기지가 격파당할 위험이 있소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숫자에서 절대적으로 열세란 말이요. 게다가 시간을 두고 반란이 일어난다면 여러 곳에서 다른 세력들이 추가로 일어날 수도 있고, 공화파 놈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단 말이오.”
“수송함은 다 준비되었겠지요?”
“내 장군께서 노닥거리시는 동안 독일 기업의 도움을 좀 받았소이다.”
“잘하셨소. 이제 우리가 받은 수모를 갚아줄 때가 되었구려.”
그제서야 프랑코의 얼굴이 펴졌다.
다음날 새벽, 라디오 방송에서 일제히 일기 예보를 송신했다.
“오늘 에스파냐 본국 전역에 걸쳐서 맑은 하늘입니다.”
“총리! 총리! 이것을 좀 보시오!”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대통령이 들고 있던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호외인 것 같았다. 평소 조용하던 대통령이기에 총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급하게 건네받은 호외를 읽은 총리는 경악했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는 그의 눈이 미친 듯이 핑핑 돌았고,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호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모로코에서 반란이 일어나다!>
…모로코에 주둔 중이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군대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로코에 있는 정부 관저와 방송국을 장악하였으며, 해당 지역에는 계엄령이 선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몰라 장군은 라디오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
“반대파에 대한 핍박을 일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혼란한 정부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우국 충정의 심정으로 혁명을 일으켰으니, 국민 여러분은 아무런 근심을 하지 마시고 생업에 종사하여 주십시오. 우리 혁명군은 정부를 정상화한 후 알맞은 사람에게 정부를 넘길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까 했소이다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통령 마누엘 아사냐가 중얼거렸다. 그 첩보가 사실이었을 줄이야. 멀리 쫓아낸 것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 바다를 사이에 끼고 있기에, 게다가 영토도 얼마 안 되고 모로코란 땅에는 적당한 공장 같은 것도 없기에 분명히 누가 봐도 본국이 유리한 상황.그런 상황에서 쿠데타를 일으킬 줄은 몰랐다. 대통령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입니다.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발표해야 각지에서 일어난 쿠데타 시도도 무위로 돌아갈 것이고, 자연히 반란군의 힘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급히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하, 하지만…”
“각하, 시간이 없습니다!”
대통령을 총리가 재촉하며 억지로 방을 나섰다. 뭔가 답답했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같은 시각, 마드리드.
“오른쪽! 오른쪽! 놈들이 온다!”
“여기 지원이 필요하다!”
“바리케이드가 무너졌다! 빨리! 여기를 지켜야 해!”
때맞춰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반란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다. 비록 가진 자 없는 사람들이었고, 훈련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 더 강했다. 곧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뭣들 하나! 저들은 훈련받지도 못한 시민들이야! 저들을 이기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나!”
군단장 호아킨 판줄이 미친 듯이 호령하면서 몬태냐 고지를 향해 공격을 명령했지만 정부군도 아닌 시민군인 주제에 저항은 생각보다 거셌다. 결국 계속되는 공격 끝에, 더 이상 공격을 진행할 수 없게 된 반란군은 항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피에 흥분한 군중들은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그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수많은 사람이 피를 뿜으며 쓰러져 갔다. 첫 전투는 시민군의 승리로 끝났다. 비록 승자도,패자도 없고,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지만.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시민군이 조직되어 싸우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시민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드리드의 시민군은 피로 요새를 지켜낸 직후 가장 가까운 도시인 과달라하라로 진군했다. 쿠데타의 주범 중 한 명인 마누엘 요피스 장군까지 사로잡아 처형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누가 봐도 반란군이 패배할 것이 자명했다. 게다가 반란군은 카디스 항과 모로코, 카탈루냐에 걸쳐 널리 찢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각, 한 통의 전보가 외국을 향해 발송되고 있었다.
“흠… 지원을 요청한다고…”
“비밀리에 온 전보입니다. 본국에서도 이미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충분히 도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에 도움을 주고 스페인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면 우리는 우리에게 우호적인 국가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는 셈입니다.”
선전부 장관 괴벨스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승산이 있는 건가? 이건 아무리 봐도 반란군이 질 것 같지 않은가.”
“설령 승산이 없다 하더라도 이번에 여럿 개발된 신무기들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도울 가치는 충분하고, 게다가 어쨌거나 공산주의를 몰아낸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에게 체면도 서게 됩니다.”
“아, 그 1호 전차 말이지… 트랙터를 개발한다고 위장하면서 개발해야 하는 신세였지. 그런데, 이번에 그들을 도우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아닌가? 육군사령부의 프리취인지 뭔지 하는 그 늙은 멍청이는 계속해서 이런 군사적 도발이 전쟁으로 이어질 경우 우리에게는 막을 힘이 없다고 계속해서 경고해 왔단 말이야. 참 듣기 싫은 말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더 화가 나는 일이었단 말일세. 영국이나 프랑스의 반응도 걸리고 말이야.”
“저들은 사회주의파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저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없습니다.”
“거 그래도 국제법을 위반하는 일이니 우리가 함부로 나섰다가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게 뭔가?”
“의용군이란 명목으로 물자를 보내는 겁니다. 의용군이라면 정규군이 아니니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딱히 우리를 트집잡을 요소도 없고,또한 어쨌든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하게 도움이 될 겁니다.”
“오호라, 그런 방법이 있었군. 좋아. 당장 실행하게.”
“예, 총통!”
괴벨스가 방을 나간 후, 히틀러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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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부터 다루는 것에 대해서 좀 의문을 가지실 만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이 듭니다. 히틀러가 총통에 오른 것이 1933년이고, 내부의 반대파를 모조리 싹 쓸어버린 다음, 본격적으로 국제 정세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스페인 내전부터입니다. 이전까지의 독일의 행동 - 베르사유 조약 파기, 로카르노 조약 파기, 라인란트 점령 등 - 은 사실 어떻게 보면 "너희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된단 말이냐"라는, 일종의 불만을 공격적으로 표시한 것이었고, 아차 싶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그 때서야 독일에 대해 유화 정책으로 돌아서게 됩니다(엔하위키 참조). 게다가 세계 대전에 대한 두려움은 그 때도 여전히 존재하던 것이었습니다.
1939년 9월 1일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그 전의 국제 정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1939년의 체코슬로바키아를 이야기하자니 뮌헨 협정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독일이 최초로 외국에 간섭한 스페인 전쟁으로 이야기가 올라가더군요. 사실 지금도 앞에 더 써야 하는 걸 잘라낸 겁니다. 게다가 태평양 전선은 중일전쟁을 이야기해야 하다 보니...
이 스페인 내전을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라고까지 해 두죠. 하여간, 쓰고 보니까 이게 점점 일이 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