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폭풍 전야 – 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3)

 

 

민주주의란 때로는 피로 목욕을 해야 하는 것.”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마드리드 전황은 비록 답보 상태라고는 했지만, 전황은 착실하게 좋아지고 있었다. 방 안에 놓인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프랑코는 다음 움직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북쪽의 공화국군 잔당을 쓸어내고 동진해서 지중해를 장악하면 처음에는 그토록 보이지 않았던 승기도 잡아낼 수 있다. 비록 이쪽의 해군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이쪽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돕고 있고, 더구나 공화국의 해군은 지휘관이 없다. 포섭했던 지휘관이 모조리 수병들에게 사살당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지만, 영국도 프랑스도 돕지 않는 상황에서 지중해를 장악할 수 있다면 공화국군을 말려버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결국은 바르셀로나가 문제란 말인가.”

이런 점에서 지난해에 실패했던 바르셀로나 반란은 뼈아픈 것이었다. 일거에 지중해를 장악할 발판을 내준 셈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은 팜플로냐를 점령해서 빌바오와 사라고사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만, 시간을 주면 언제 힘을 키워서 다시 팜플로냐가 점령당할지 모른다. 위치상 팜플로냐는 샌드위치에 끼인 격이라 양면작전을 사용한다면 문제가 될 가능성마저 있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는 에스파냐 제2의 도시였고, 더구나 빌바오를 정리하지 않으면 배후의 적을 놓아두는 셈이니 빌바오를 정리하지 않고 동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마드리드의 상징성이야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인 만큼 그는 마드리드에 남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대신 북쪽에 몰라 장군을 파견해서 북쪽 전선을 정리하도록 주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드리드 전선이 고착화된 이상, 그로서는 차근차근히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했다.

 

…”

콘도르 군단의 사령관인 휴고 슈페를레 중장과 리히트호펜 중령은 날아온 전보를 보고 상의를 하고 있었다. 다음 작전 계획을 짜기 위해서였다.

토마 중령의 생각은 어떤가?”

“3면에서 공격을 시작하면 우리가 질 수 없는 전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소련제 전차가 성능이 상당히 뛰어난데다가 우리의1호 전차로는 저들을 상대하기는커녕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점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군의 차례로구만.”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지요.”

그러면서 리히트호펜은 지도의 한 지점을 손으로 짚었다.

여기, 이 지점입니다. 몰라 장군이 요청해 온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3 31일을 기해서 공격을 시작한다고 하니 그 때 맞춰서 폭격하면 될 겁니다.”

요즘 날씨가 좋지 않아서 걱정되는군.”

전쟁에는 여러 변수가 있는 법입니다. 몰라 장군도 그 점은 이해하겠지요.”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라면 이 지점이 전략상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 마을이?”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동서의 연결을 끊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팜플로나에 있는 아군은 전략적으로 양면의 공세를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양쪽의 연락을 방해하고 진행될 공세를 사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일은 적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쪽에 적의 예비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증원을 막아야 공격이 수월해질 겁니다.”

그렇군. 좋아. 일단 이 공세를 진행하고 보자고.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폭격을 개시하도록.”

 

상황은 암울했다.

북부 공화국군을 이끌고 있는 프란시스코 야노 데 라 엔코미엔다 장군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보급로도 차단당했고, 지브롤터를 차단당했기 때문에 본국으로부터의 보급 또한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에스파냐 공화국군의 공군은 약했다. 공중수송은커녕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전선이 가로로 길게 놓여 있는 탓에 막아야 할 요충지도 한둘이 아니었다. 서쪽으로는 오비에도가 이미 함락 직전이었고 동쪽으로 가는 길목은 이미 차단당했으며 남쪽으로는 부르고스 방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적까지 상대해야 했다. 비록 수는 이쪽이 우세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그렇듯이 수만 많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어두운 얼굴에 그늘이 더더욱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한숨을 내쉬면서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보급품의 부족, 보급로의 차단은 사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조금씩 그들은 항전할 의지를 잃어 가고 있었다. 지중해의 비스케이 만 방면도 어느새 프랑코의 함대가 장악해 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전령은 그저 좋지 않은 상황을 늘어놓는 정도에 불과했다.

부관!”

! 무슨 일이십니까?”

이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동쪽의 빌바오 인근에 있는 예비대를 불러오도록.”

엔코미엔다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4 26, 바스크 동쪽의 어느 한 작은 마을.

전군, 서둘러서 빌바오로 이동하라!”

바스크 주둔군 사령관이 급하게 명령을 내리면서 병사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는 답답한 표정으로 하늘을 살펴보았을 뿐이었다. 적에게는 공군이 있고, 우리에게는 없다. 공화국군의 공군은 없다시피했다. 그런데 이 바스크 주둔군은 말이 군대지 사실상 민병대나 다름이 없었다. 당연히 공군의 공격을 막을 방공포대 같은 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날씨라도 궂으면 비록 병사들은 고생하긴 하겠지만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하늘이 맑았다. 2주 전만 해도 그토록 비가 내려서 서쪽에서 공군이 활약할 수 없었다고 하건만, 이 날만큼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적군이다! 적의 공군이다!”

누군가의 외마디 비명이 울려퍼졌다.

 

리히트호펜은 책상을 내리쳤다.

지금 장난하나! 공군 조종사들은 대체 눈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부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대체 그 많은 다리를 하나도 격파하지 못했다는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 조그만 마을을 폭격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것인가!”

진정하게, 중령.”

옆에서 슈페를레가 격분한 리히트호펜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적은 민병대야. 폭격 따위는 겪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일세.”

하지만 이대로라면 전략적으로 이 마을을 폭격하는 이유가 없게 되지 않습니까? 장군님,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 일단 진정하고, 내 계획을 말해 주지. 지금부터 가용한 예비대를 모두 동원해서 마을을 무자비하게 폭격하게나.”

? 아니, 하지만…”

들어 보게나. 적이 민병대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그들은 하늘에서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 아무리 사기가 높다 한들 무자비한 폭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나? 자연스럽게 그들은 사기도 저하되고 혼란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할 걸세. 게다가 민병대인 만큼 시가지가 파괴되고 시민들이 폭격으로 죽어가면 그들의 심리적 충격은 훨씬 더할 거란 말일세.”

, 그거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곧 시행하겠습니다.”

흐흐,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그 예비대가 민병대라서 다행이지, 공화국군 같은 정규군이었으면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네. 공병대라도 붙었으면 우리는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통이나 프랑코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을 거 아닌가.”

슈페를레가 음흉하게 웃었다.

 

모두들 피해! 건물이 무너진다!”

아아악!”

, 물을 가져와! 건물에 불이 붙었다!”

여기저기서 아비규환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강 쪽으로 집중되던 폭격이 어느새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폭발로 인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은 주로 시민들이었다.

서둘러서 이 곳을 탈출해야 한다! 모두 정신 차려!”

사령관은 그렇게 병사들을 호령하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뒤로 시민들의 비명 소리와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무자비한 폭격으로 이미 아군의 통제는 조금씩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무고한 사상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병사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무엇들 하나! 정신들 차리고 움직여야 산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하하라!”

아무리 호령해 봐도 이미 병사들은 혼란 상태에 빠져서 지시를 듣지 않고 있었다. 귀를 막고 주저앉는 병사, 탈영하는 병사, 하늘에 대고 의미없이 총을 갈겨대는 병사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방공포대는커녕 적의 공군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 하나도 없다. 무기고는 이미 파괴되었고, 장비는 빈약했다. 시민을 지키기는커녕 아군의 몸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웠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왔고, 적의 공군에 대한 분노가 몸을 삼켰다.

사령관이 할 수 있는 것은 무너져 가는 게르니카를 바라보며 그저 주먹을 움켜쥔 채 흐르는 눈물을 참는 것뿐이었다.

 

전쟁이 길어지고 전선이 넓을수록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내부의 적이다. 당장 공화국군도 내부에 적이 있다는 몰라 장군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집어져서 적을 눈앞에 두고 내전이나 벌이고 앉아 있었으며, 전선이 넓으니 자기보다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라도 등장했다가는 혁명군 총수의 위치에 있는 자기 자신의 위치도 위협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의 눈에 거슬리는, 또는 위협이 될 만한 경쟁자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알아서 사라져 주었다는 것이다. 팔랑헤 당의 지도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는 이미 손을 써서 처형당하도록 했고, 자신을 지지해 줄 자본가를 대표하던 자본가 당의 당수 힐 로블레스는 외국으로 도피했으며, 카리스마가 있던 호세 칼보 소텔로는 이미 암살당했다. 마누엘 고데드 요피스는 바르셀로나 반란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처형당했고, 호세 산훌호는 비행기가 추락해서 사망했다. 남은 것은 공화국군에 떠밀려서 퇴위한 왕 알폰소 13세와 왕위를 사칭하고 다니는 하비에르, 북쪽 전선을 담당하는 에밀리오 몰라, 그리고 서남부를 장악한 케이포 데 야노였다. 북쪽의 전선과 서남부의 전선 둘 중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혁명 자체가 틀어질 위기가 생길 수 있으니만큼 그쪽을 건드리는 건 절대 금물이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내부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면, 먼저 왕족의 손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부관, 있는가?”

“말씀하십시오.”

“지금 즉시 알폰소 13세와 하비에르의 동태를 살피고, 혹여 국내로 들어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차단하도록.”

“알겠습니다.”

대답한 부관이 나가자마자 헐레벌떡 전령이 뛰어들어왔다.

“뭔가?”

“자, 장군! 큰일났습니다! 몰라 장군이 비행기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이런 걸 두고 손 안 대고 코를 푼다고 하던가. 어차피 몰라의 군사적인 능력은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뜻밖의 불행, 또는 행운을 만난 프랑코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다. 후임은 나중에 알려줄 테니 전령은 대기하고 있도록. 나가 보게.”

“옛!”

전령이 나가고 혼자 남은 프랑코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서남부만큼은 비록 그가 어찌할 수 없었지만, 일단 에스파냐를 장악한 후에 천천히 서둘러도 늦지 않다. 위치상의 문제로 몰라 휘하의 장교들은 프랑코에 소속될 것이 뻔했고, 그것은 곧 군 내의 자신의 입지가 강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화국군은 점점 밀려 가고 있었다. 그들이 7월 초에 계획하고 실행했던 공세였던 마드리드 전방에서의 브루네테 전투는 그나마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미약한 공군력을 모두 날려버림과 동시에 지킬 병력이 없어서 군을 후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와 버렸고, 아스투리아스에서의 패전은 서북부의 전선이 말끔히 정리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하지만 3월의 과달라하라 전투에서 이탈리아 의용군을 상대로 이긴 전적이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패한 건 아니었다.

작전 회의에서 후안 에르난데스 사라비아 장군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걸 수 있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이 테루엘이 가진 의미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테루엘은 적의 아라곤 공세의 상징과도 같은 지점입니다. 하지만 톡 튀어나와 있어 삼면이 우리 군대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따라서 점령하기도 쉽습니다. 게다가 여기를 잡으면 북쪽의 바르셀로나와 남쪽의 아군과의 연계가 짧아져,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기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균형추를 맞출 수는 있습니다. 전해오는 첩보에 의하면 12 18일에 과달라하라 방면으로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된다고 하니, 그 직전인 12 15일에 공격해야 적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겁니다.”

작전회의석상에 앉은 장군들은 모두들 결연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이 공세만큼은 성공시켜야 했다. 공화국군이 걸 수 있는 마지막 도박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아무 것도 없다. 바르셀로나가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고 그렇게 되면 지중해가 넘어간다. 공화국군은 보급을 받지 못하고 전멸할 것이 뻔하다. 모두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건 도박이었다.

그 해 겨울은 스페인으로서는 20년 만의 강추위였다. 그 강추위만큼이나 비정한 전장에서, 그들은 승리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뭐라고!”

테루엘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에 프랑코는 경악했다. 설마 이 정도 공세를 그것도 초기에 아무런 공중 공격이나 심지어 포병대도 없이 빠르게 진행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전해오는 전령들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의 공세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했다고 합니다. 적의 사령관은 사라비아 장군이며, 공세는 엔리케 리스터 장군이 지휘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병력은 얼마나 있나?”

 10만 명 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테루엘 쪽의 병력이 채 1만 명이 못 되는 상황입니다. 적의 병력은 약 4만 정도로 추산됩니다.”

제길, 과달라하라 공세는 취소해야겠군. 레이 다르코트 장군에게 즉각 전령을 보내라. 어떤 일이 있어도 테루엘을 사수하라고 전하도록!”

프랑코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다 잡은 전쟁인 줄 알았건만 아직 상황은 그렇게 낙관할 때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양군의 상황은 끔찍했다.

과달라하라 공세가 취소 완료된 것은 공세 시작 8일 후인 23일에서였고, 지원 공격은 29일에서나 이루어졌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해의 겨울은 너무나 추웠다. 영하 18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끔찍한 온도 속에서 장비는 얼었고, 많은 병사들이 동상에 신음했으며, 얼어붙은 사지는 아예 절단해내야 했다. 이 때문에 반란군의 공세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테루엘을 지키던 반란군의 수장인 다르코트는 테루엘 대주교와 함께 항복하고 말았다. 1938 1 8일의 일이었다. 공격은 성공했다. 이제는 지키는 일만 남아 있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프랑코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에 맞서 공화국군은 국제여단까지 끌어들여가면서 저항했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차근차근히 진격해 오는 반군에 맞서 공화국군은 강력한 저항을 시도했다. 그렇게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는 전투가 겨울에 벌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반군은 테루엘의 북쪽을 기습해 버렸고, 공화국군이 허를 찔리면서 북쪽의 병사들이 모두 후퇴하고 도망치면서 상황은 기울어졌다. 주력이 남쪽인 상황에서 벌어진 공세에 공화국군이 치명타를 얻어맞은 것이었다.

얄궃게도 2 18일이 되자 상황은 완벽하게 반대가 되어 있었다. 수적으로 불리한 공화국군이 테루엘의 요새에 포위되어 있었고, 결국 사라비아 장군은 이틀 후 총퇴각 명령을 내렸다.

전투가 지나간 자리는 끔찍했다. 테루엘 시내에 남겨진 공화국군의 시체만 세어도 무려 1만 구가 넘어갔다. 양군의 사상자는 모두 5만 명을 넘어갔다. 양군이 합쳐서 도합 14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다고 추산되는 이 전투의 결과는, 비록 초반에 테루엘을 내주기는 했지만,완벽한 국민당군의 승리였다. 공화국군은 그들이 가진 물자를 모두 소모했고, 동북부도 이제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운명은 단 하나, 멸망뿐이었다.

 

1년 후, 1939 4 1.

공화국군이 벌인 마지막 저항이었던 아라곤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에브로 강에서 또다시 피가 강을 흐르는 대혈전을 벌인 끝에 마침내 최종 공세를 완료한 프랑코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은 성공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 덕분에 마침내 그는 독재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알아서 자멸해 준 공화국군  패배하는 와중에 쿠데타까지 일으켰으니 협상 같은 건 더더욱 할 필요가 없게 된 일이었다  덕분에 그는 이제 명실공히 스페인의 최고 자리에 올라 있었다. 비록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폐위된 알폰소 13세에게 몰수된 재산을 돌려주고 시민권까지 발급해 주었지만,그가 돌아온다고 해서 프랑코의 위치가 흔들릴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벌이는 잔혹한 총살과 처형, 그리고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은 교회와 우익 매체로부터 에스파냐 내부의 병적인 요소들을 척결하고 에스파냐를 정화한다는 축복을 받아가며 알아서 척척 잘 자행되어 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 가고 있었다. 공화국군이었다는 미명 하에, 프랑코를 반대한다는 미명 하에 여기저기서 하루에도 수백 명씩 총살당하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아는 프랑코였다. 어차피 외국에 알려진다 해도, 미리 그 전에 선수를 쳐둔 것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걱정할 것은 없다. 카톨릭 교회를 상대로 공화군이 저질렀던 각종 잔혹행위를 선전함으로써 영국과 프랑스가 등을 돌리게까지 만들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제부터는 그저 은폐하면 그만이다.

프랑코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그의 방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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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일이 몹시 바빠서 연재가 거의 일 주일 가량 늦어졌네요. 어쨌든 속에서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못 하고 있던 걸 깔끔하게 끝낸 기분이라, 조금 낫군요.

실은 이번에 다룬 게르니카 폭격은 저번 회차에서 다뤘어야 했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나, 흐름으로 보나, 게르니카를 저번에 다루고 이번에는 테루엘 공세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제가 소설을 쓰는 게 처음이라 분량 조절이 쉽지 않더군요.

에브로 공세가 사실 테루엘 공세보다도 더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공세였는데, 이걸 분량상 그냥 넘기게 되어서 조금 답답하긴 합니다. 오늘따라 글이 잘 안 써지기도 했구요. 좀더 잔혹하게, 좀더 리얼하게 전투를 묘사했어야 했다는 압박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네요. 쓰다 보면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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