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폭풍 전야 – 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백기완

 

 

한 무너져 가는 건물에서 급하게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기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가끔 종이를 빼서 찢어버리면서 정열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 남자의 직업은 신문기자였다. 책상 한 켠에는 무기가 놓여 있었다. 언제 무기를 들고 나가야 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전에 이 투고를 빠르게 끝내야 한다. 그런 압박감에 시달린 채로 계속해서 그는 미친 듯이 타자기를 두들겼다. 어째 오늘따라 오타가 심하다. 지우고 또 지우고 찢어버리고 하다가 드디어 한 편의 그럴듯한 르포 기사를 쓰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골목에서 갑자기 총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불길하게 끼기긱거리는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담배를 한 번 깊게 빨았다가 내쉰 후, 그는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와 완성한 기사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뭔가에 홀린 듯이 셔터를 누른 후, 급히 뒤돌아서 후퇴하는 시민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진이 어떻게 인화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죽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면 이 일도 헛된 일은 아니니라. 하지만 한 켠으로는 여전히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사진에만 목숨을 거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시민군의 대열에 진작에 총을 쏘고 합류했어야 했다는 자책감과 괴로움이 그를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었다. 이 사진, 이 기사로 꼭 세계에 이 일을 알리리라. 그렇게 해서 죽어간 저들에게, 저 흐른 피에 속죄하리라. 그는 그렇게 입술을 꽉 깨물면서 뒤로 뛰어갔다.수는 시민군이 많았지만, 저 앞에서 다가오는 괴물 앞에서는 그의 힘은 무용지물이었다.

훗날, 그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쓰게 된다. 그 이후로 수십 년간 베스트셀러가 된 그 책의 이름은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단편소설이었다.

 

한 시간 전, 마드리드 인근의 한 요새.

여러분! 과달라하라가 해방되었습니다!”

한 남자가 가운데 연단에 서서 시민군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적의 수괴인 마누엘 요피스를 잡아 처형했고, 동쪽은 안전합니다! 우리의 승리는 확실한 것입니다!”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그가 다시 손을 들어 군중을 진정시킨 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소련에서 우리를 돕기로 했습니다! 전세계 최강국 중 하나인 소련이 우리를 돕는다면, 반란군을 쓸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언덕을 지키고, 이 도시를 피를 흘리며 지켜간 것이 헛된 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군중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그렇게 환호하는 와중에 한 사람이 먼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우리를 돕기 위해서 전차가 오고 있어요!”

멀리서 굉음을 일으키고 모래바람을 일으키면서 전차 사단들이 천천히 진군해 오고 있었다. 군복을 입고 있었긴 하지만 스페인 반란군의 군복은 아니었다.

소련군인 것 같아! 군복 멋있다!”

, 저 전차들, 처음 보는 것들인데? 우리 나라에서 보던 부실한 전차와는 차원이 달라 보이잖아!”

그러게, 겉보기에도 튼튼해 보이고 말이야.”

그렇게 사람들이 수군대는 동안 전차들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걸.”

안경을 낀 한 남자가 묘하다는 표정으로 전차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뭔 일인데 그래?”

내가 잠깐 소련에 있을 때 봤던 전차들은 전부 다 빨간 별을 전차에 박아넣고 있었거든, 근데 그런 게 안 보여서 말야.”

에이, 정비를 받으면서 지워졌던가 아니면 실수로 빠진 거겠지.”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그들은 전차가 시내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전차들만 있다면 시내를 방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시민군은 연막탄을 하늘에 쏘는 것으로 전차가 들어올 곳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오던 전차들이 이동을 멈추었다.

대장님! 전차들이 오다가 멈추는데요?”

 이상하네? 그냥 밖에서 적군을 막을 생각인가?”

혹시 대장님께 연락 온 게 있었나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우리는 의용군이야. 이제 저들이 오면 직접 만나야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겠지.”

대장님, 근데 전차들이 들어올 생각을 안 하네요?”

이상하게 여긴 의용군 대장이 확성기로 전차에 대고 외쳤다.

어서 들어오시오! 같이 반란군에 맞서 싸웁시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이 조용히 있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전차의 왼쪽 아래에 있던 해치가 열렸다. 거기에는 총이 한 대 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전차의 포신이 불을 뿜었다.

 

아아악!”

, 저게 이쪽으로 온다!”

모두들 피해! 지금으로서는 맞설 수가 없어!”

의용군은 급하게 뒤로 후퇴했다. 전차가 쏘아대는 기관총은 그들이 지키고 있던 곳을 피로 물들였고, 전차의 포신에서 들려오는 굉음은 그들의 가슴 속에 깊은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곧 포탄이 터지면서 생긴 매캐한 먼지들이 시야를 가렸다. 이래서야 뭘 해볼래야 해볼 수가 없다.

도대체, 도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분명히 정규군의 전차는 아니었다. 미리 이것저것 꼼꼼히 체크해 본 그였다. 정규군의 군 편제, 주요 장비, 특히나 지금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전차의 사진까지 여기저기에 부탁해서 알아냈다. 신문기사에서, 사열식에서 나왔던 전차의 사진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에스파냐의 전차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리고 소련이 우리를 돕겠다고 했었다. 전차가 올 곳이 없는데, 도대체 저들은 어디에서 저런 전차를 구해서 우리를 공격한단 말인가? 회한과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심하게 맑기만 했던 날이었다. 땅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흐르는 피와 어울리지 않게 푸르기만 했던 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늘에서 웬 비행기들이 굉음을 일으키며 몰려오고 있었다.

 

수도를 빼앗기가 쉽지 않소이다.”

예상보다 시민군의 저항은 거셌다. 단순히 공격하면 될 줄 알았던 반란군 사령부의 장군들에게서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사람, 프란시스코 프랑코만이 마치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수도를 점령하지 못하면 행정업무를 마비시킬 수 없고, 우리의 명분을 제대로 세울 수도 없소이다. 수도를 반드시 탈환하고 저들을 수도에서 몰아내야 수도를 버린 정부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고, 또 수도에 있을 공장들도 우리가 쓸 수 있으며, 수도의 물자와 인력 또한 풍부한 것이오. 전략적으로 수도가 가지는 가치가 막대할진대, 이래 공격이 지지부진하니 참…”

안절부절못한 듯이 서성이고 있는 몰라 장군에게 프랑코 장군이 한 마디를 던졌다.

저들은 비록 물자와 인력은 좀 있다고는 하나, 장비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앞서고 있소. 걱정할 것이 없소이다.”

장군, 지금 이렇게 낙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소? 저 바스크 방면의 오비에도(Oviedo)와 빌바오(Bilbao)의 산악 지역에서도 저항이 거세고, 우리 혁명군은 우엘바(Huelva)와 카디스(Cadiz), 그리고 세비야(Sevilla) 방면에 일부 군대가 찢어져 있어서 전략적으로 불리하단 말이오!”

아 그것 참, 걱정 마시라니까, 거 참 침착하지 못하시군…”

프랑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파이프를 한 번 빨았다. 지켜보고 있는 몰라는 결국 분통이 터졌다.

도대체 믿는 구석이 뭐요! 내 장군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아주 늦게 일으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소! 장군은 너무 굼뜨단 말이오! 뭘 믿고 그리 느릿느릿하게 계시오? 혁명은 시간이 필수인 걸 모르시오?”

몰라 장군, 아직도 감이 안 잡히시오?”

화를 내는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본 프랑코는 이윽고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이 혁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저들의 예비대를 조사해 두었소이다. 4만이 넘는 예비대가 저들의 손에 있었소. 물론 대다수는 노동자들이지만 말이오. 그런데 저들은 그걸 사용할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소이다. 저들이 그 예비대를 사용했다면 우린 진작 부르고스(Burgos)는 물론이고 라 코루냐(La Coruna)까지 내줘야 할 판이었소. 저들의 운용상의 미숙함이 저렇게 뻔히 보이는데 우리가 이기지 못할 리가 없잖소?”

전략적인 불리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

우리는 남부 최대 도시인 세비야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소이다. 멋진 작전이었지. 우리가 마치 물러갈 것처럼 한 다음 내부의 동조자를 이용해서 군사를 밖으로 빼내고, 그 틈에 우리가 도시를 점령해서 섬멸하는 기막힌 작전이었단 말이오. 길을 막고 있는 바다호스(Badajoz) 정도로는 세비야의 인력과 공업력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고, 이는 남부 말라가(Malaga) 일대도 마찬가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안심은 되겠소이다만 그래도 이거 너무 수도 공격이 지지부진하오이다. 게다가 겨울이 오고 있어요.”

, 걱정하지 마십시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공격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약점을 찾아볼 수밖에요. 독일군의 지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게요.”

그나마 저 콘도르 군단(Legion Condor)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올시다. 독일군에게 이것 참 고맙게 되었소. 우리에게 전차는 물론이고 폭격기까지 지원해 주다니 말이오. 흐흐흐흐…”

 

폭격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무자비한 폭격으로 인해 이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길가에는 총에 맞은 시체, 폭발로 인한 시체, 화재로 인해 불타 죽은 시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빌헬름 폰 토마 중령이 이끄는 1호 전차부대와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중령이 이끄는 폭격기 대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포격과 폭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틈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도록 요새는 아무런 약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공화국군도 상태는 심각했다. 이미 인명 손실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었고, 이 와중에 어느 흥분한 군중이 1천 명에 가까운 포로들을 죽이는 대학살까지 벌어지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공화국군의 명성에도 금이 가고 말았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몰라 장군은 억지로 병력을 집중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이는 반란군의 피만 불러올 뿐이었다.

게다가 공화국군에는 한 가지 도움의 손길이 도착하고 있었다.

 

콘도르 군단 제1중대, 전차 3대 파손, 1대 이동불가.”

콘도르 군단 제3중대, 전차 2대 파손, 2대 이동불가.”

콘도르 군단 제6중대, 전차 1대 파손.”

계속해서 손실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토마 중령은 들려오는 보고를 들으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부관, 도대체 뭘 했길래 전차들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가?”

전해오는 현장 보고에 따르면, 에스파냐 전차가 아닌 다른 전차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니, 전차를 받을 만한 곳이 있다는 말인가?”

전차 전면에 붉은 별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소련군의 전차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 그것 참 이래서야 어디 길이나 뚫겠나? 리히트호펜 장군 연결해.”

그렇게 말하면서 토마 장군은 예하 부대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교전 중지. 즉시 후퇴하여 재정비에 들어간다.”

 

, 무슨 일이오?”

리히트호펜 중령, 나 토마 중령이오. 이거 도저히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었소이다. 우리 전차의 힘으로는 저 소련군들의 전차를 당해낼 수가 없어요.”

우리 슈투카(Stuka)로서도 정밀 타격은 어렵소이다. 게다가 전차들이 도시를 방패삼아 저렇게 숨어서 포격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도 미칠 노릇이오.”

일단 프랑코 장군에게 잠시 공세를 중지해 달라고 요청해야겠소이다. 저쪽도 몰라 장군이 멍청하게 시가지에 억지로 부대를 투입하는 대실수를 저질러서 손실이 크다고 들었소이다. 이대로는 우리가 당해요. 일단 포위망을 안정화시키는 선에서 이번 공세를 마무리짓도록 하십시다.”

좋소이다. 프랑코 장군에게는 내가 연락해둘 테니 중령께서는 전차부대의 재정비에 착수해 주시오. 필요하면 물자를 본국으로부터 지원받아야 하니 연락을 좀 취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소이다.”

알았소. 세 시간 후에 다시 통화하십시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토마의 표정이 심하게 답답해 보였다.

 

거 내가 뭐랬소. 서두를 거 없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

몰라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창가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프랑코가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쳤다.

, 여기를 보시오.”

이게 무엇이오?”

현 상황을 나타낸 지도이올시다. 바다호스의 공략이 다행히 성공했고, 팜플로나(Pamplona) 일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해서 빌바오 일대의 공화국군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소. 말라가 항도 우리가 잡았으니 제해권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오.”

그렇다면 장군의 생각은 무엇이오?”

이 마드리드는 손쉽게 떨어질 곳이 아니외다. 일단 마드리드 주변을 차근차근히 정리한 다음, 포위된 마드리드에 일제 공격을 가하는 그런 방법을 써야 할 것이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바로 이 도시가 될 것이오.”

프랑코가 손으로 짚은 도시는 동북쪽의 사라고사(Zaragoza)였다.

이 도시를 공략하는 데 성공하면 레리다(Lerida)와 바르셀로나로 공격을 이어갈 수 있고, 우리 에스파냐의 동북쪽 항만을 장악함으로써 적의 지원을 더더욱 옥죌 수 있소이다. 운이 좋으면, 퇴로까지 차단해서 섬멸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오.”

내 장군의 말을 듣지 않아 이번 마드리드 공격에서 큰 피해를 보았소이다. 일단 장군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소.”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일단 북쪽의 비토리아(Vitoria)로 가 주시오. 빌바오 공세를 마무리짓고 저들을 섬멸할 사령관이 필요하니 말이오.”

 

에스파냐 북쪽의 바스크, 빌바오.

이 곳의 사령관인 아돌포 프라다 바케로 장군은 북부에 고립된 채 지원군도 없이 고독하게 싸우고 있었다. 사실 팜플로나 인근의 길목을 지키는 것은 일단 피레네 산맥이 험준한 덕분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고, 게다가 이 길목을 통해 바르셀로나 방면으로부터의 보급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빌바오 내부에서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설상가상으로 군 내부에서 동조자가 나와 버린 덕분에 보급은커녕 한정된 물자를 가지고 게릴라전을 하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불과 반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 상황까지 몰리지는 않았다. 반란군의 수괴 몰라라는 놈이 라디오에서 지껄였던 그 말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랐다.

 

4개월 전의 일이었다.

프랑코가 한창 마드리드 공격 준비로 분주할 때, 몰라가 갑자기 사령부로 찾아와서 대뜸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던 것이다.

공격하기 전에 내 라디오에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소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러니까…”

귀에 대고 속닥이는 몰라의 말을 듣는 프랑코의 얼굴에서 순간 음흉한 웃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장군은 차라리 정치가를 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단 말이오. 몰라 장군, 기대하겠소이다.”

장군, 그거 지금 칭찬으로 하는 말이요, 아니면 나를 놀리는 말이요?”

껄껄 웃으면서 몰라가 프랑코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특별회담 형식으로 진행된 라디오에서는 몰라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마드리드를 공격할 네 개의 사단이 있소이다. 첫 사단이 쓰러지면 둘째 사단이, 둘째 사단이 쓰러지면 셋째 사단이, 그마저도 쓰러지면 넷째 사단이 계속해서 공격할 것이오. 뿐만 아니라 이미 곳곳에 다섯 번째 사단이 숨어 있다가 우리가 공격하는 즉시 반기를 들고 일어설 것이니 우리 혁명군의 승기는 완벽하고, 저 무능한 정부군에게는 승기가 없소이다. 혹여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저항군이 있다면, 부질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생업에 종사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바이오.”

이 말 한 마디에 전국에 있는 공화국군의 사령부는 그야말로 뒤집어져 버렸다. 내부 반란군을 색출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실시되었고,이 과정에서 그간 약한 연대를 유지해 왔던 공화파와 무정부주의자간의 협력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심지어 바르셀로나에서는 공화파가 반란을 일으킨 와중에 자기들끼리 내전을 치루기도 했다. 결국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여기저기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겠다고 선언한 지역이 있었다. 이 바스크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보급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케로 장군은 답답한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가올 적의 공세를 대비해야 하고, 만약을 대비해 퇴로도 확보해 두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며 일어서는 그의 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비참해 보였다. 그렇게 모로코에서 처음으로 반란이 일어난 지 벌써 8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지지부진한 전투는 언제 끝날 것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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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실제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페인 공화국군을 돕기 위해 의용병으로 참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주옥같은 소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마초였던 그의 단면을 볼 수 있달까요.

적을 앞에 두고 지들끼리 내전을 일으켰다는 에피소드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바르셀로나가 넘어가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양측의 전술으 개판이었음을 보여 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콘도르 군단의 주력전차였던 1호 전차는 그야말로 소형전차, 즉 탱케트(Tankette) 수준이라서 전차전은 어림도 없었고 보병지원 정도 외에는 써먹을 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현대 전차의 정석인 레오파르트2라던지 티거 아인스 같은 걸 개발해낸 독일군의 기술력치고는 의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제로 그나마 상대방과 대등한 선에서 교전이 가능했던 전차는 4호 전차(!)쯤 가서나 가능했습니다. 심지어 소련군 상대로는 그 4호 전차도 KV 쇼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독일군이 전차전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전차는 판터와 티거뿐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위에서 허구로 된 것은 소련군이 독일군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것뿐. 실제로는 소련군이 저 공화국군의 반란군 상대 학살을 자행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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